목록사는 이야기 (489)
독립출판 무간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 풀과 나무들은 온갖 시련을 홀로 견디며 무성하게 자랍니다. 소, 말, 노루가 주는 시련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홍수가 나면 뿌리채 뽑혀 나갑니다. 가뭄이 계속되면 잎들이 다 말라버립니다. 하지만 풀과 나무들..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나는 들녘으로 바다로 나간다. 그래도 간이 맞지 않으면 섬 밖의 섬 마라도로 간다. 거기서 며칠이고 수평선을 바라본다. 마라도에선 수평선이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이다. 외로움 속에 며칠이고 나 자신을 내버려둔다. 그래도 모자라면 등대 밑 절벽 끝에 차려 자..
사람들 속에서 튕겨 나와 유별나게 살다보니 늘 외로웠다. 낮이면 정신없이 초원으로 오름으로 싸돌아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밤이면 찍은 사진을 들여다본다. 외로움을 느낄 짬도 없이 분주하게 사진을 찍다보면 잡생각이 끼어들지 않아 마음이 평화롭다. 한겨울이면 김치찌개, ..
울적할 때면, 몸을 바삐 움직여 금방 결과가 나타나는 흥미 있는 일을 찾는다.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을 하는데, 그 중에 바느질은 몇 년동안 나의 흥미를 끌었다. 바느질은 특별히 돈이 드는 일도 아니어서 나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작고 하찬은 것은 버리기가 쉽다. 흩어진 천조..
끼니때가 되면 늘 서글펐다. 식도락 따위는 딴 나라 얘기고, 그저 허기를 채우는 데만 급급했다. 지금까지 먹고 입고 자는 것으론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세 가지 즐거움을 모두 누리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또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장마가 유난히 심하던 어느 해, 안개 짙은 날이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 비 한 방울 구경할 수 없고, 습기만 지독했다. 몇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이상기온에 불쾌지수가 높아 조심해야 된다고 라디오고 텔레비전이고 야단들이었다. 점심을 먹고 앉아 있어도 우울한 기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
하루에도 몇 번씩 호흡곤란으로 죽음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지금의 나의 모습이다. 침을 삼키다가, 물을 마시다가, 이야기하다가, 잠을 자다가, 수시로 호흡 곤란에 빠져 눈물을 흘린다. 어쨌든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건강할 때도 문 밖이 저승길이라는 ..
끼니는 굶어도 꿍쳐둔 돈 톡톡 털어 일년에 한번씩 개인전을 가졌다. 누구를 위한 전시회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전시할 사진을 골라 액자를 손수 만드는 등 최선을 다해서 작품을 준비하지만 어느 누구도 일부러 초대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평에 귀 기울이고 싶지 않아서..
믿음과 오기로 시작한 섬 생활이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다 보니 궁핍의 연속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산간 마을에서 생활하다 보니 따로 방세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정한 수입이 없으니 어쩌다 돈이 생기면 앞뒤 가리지 않고 필름과 인화지를 구입했다. 오로지 사진에만 매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