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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는 것처럼 낯설다... 나는 이 곳이 좋다!

독립출판 무간 2016. 10. 10. 19:58

장마가 유난히 심하던 어느 해, 안개 짙은 날이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 비 한 방울 구경할 수 없고, 습기만 지독했다. 몇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이상기온에 불쾌지수가 높아 조심해야 된다고 라디오고 텔레비전이고 야단들이었다.

점심을 먹고 앉아 있어도 우울한 기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잠방이 하나만 걸치고 있어도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다. 모든 걸 습기 탓으로 돌리며 개울 웅덩이로 가려고 나섰다. 널따란 바위 위쪽에 있는 커다란 웅덩이는 웬만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한라산 계곡에는 물이 흐르지 않아 옛날에는 이 웅덩이가 방목 중인 소들의 물통이 되었다. 축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어 방목을 하지 않다 보니 어느새 이 곳은 무성한 억새밭으로 변했다.

집에는 샤워시설이 따로 없어 여름이면 이 웅덩이가 나만의 목욕탕이 된다. 목욕을 한 뒤에는 널따란 바위에 발가벗고 앉아 명상을 한다. 누구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정겹고 꽃향기가 평화롭다. 사방이 숲이다. 숲 사이로 하늘이 보일 뿐 인기척이라고는 없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억새밭을 가로질러 웅덩이로 향하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다니는 곳이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다 눈에 익숙하련만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진다. 꿈을 꾸는 것처럼 낯설다.

안개 속에 드러난 억새 그리고 야생화, 나무... 모두가 신비롭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떠올렸다. 정오가 지난 이 시간에는 조용하던 새들의 노래소리가 요란스럽다. 늘 듣던 풀벌레 소리도 새롭다. 장마철에 흔히 대하는 안개도 전혀 새롭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데도 늘 분위기에 압도된다.

제주도 기후에 익숙해진 나는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잘 안다. 섬 특유의 잦은 기후변화 때문에 동서남북이 제각각이다. 또 해안과 중산간의 날씨가 다르다. 해안 마을에는 햇볕이 뜨거워도 중산간 초원에는 여우비가 내리다간 금새 안개가 몰려온다. 그리고, 잠시 후면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그래서, 토박이들은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들 하지만, 나는 이 곳이 좋다.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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