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생명을 살리는 농업 3 본문
그렇다면 인류의 생존만이 아니라 생명체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이 죽음의 위협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우리는 이 위협의 한 실마리를 인류문화와 생활양식의 문명사적 전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오랜 세월을 두고 싹트고 숨어서 자라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너그럽게 생각하면 전체 인류를 일깨워 삶의 질을 한 계단 더 높이기 위한 시련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과거와 다른 새로운 문화, 새로운 생활양식이 인류역사의 전면에 두드러진 것은 지난 200년 사이의 일이다.
편의에 따라 우리는 지난 수만 년 동안 인류의 역사를 지배했던 문화를 자연경제에 바탕을 둔 '기르는 문화'로, 또 그 문화를 가꾸어온 생활양식을 '공동체적 생활양식'으로 보고, 지난 200년 사이에 형성되어온 문화를 상품경제에 바탕을 둔 '만드는 문화'로, 또 그 문화를 형성시킨 생활양식을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으로 이름짓자. 물론 그 사이에 일부국가에서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이 시도된 적도 있고, 아직도 그런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도 있으나 큰 흐름에서는 벗어나 있으므로 논외로 치기로 하자.
'기르는 문화'의 숨은 주체는 자연이다. 순환하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자연이 대지의 품 안에서 '기르는 문화'의 드러난 주체인 '기르는 사람', 농사꾼을 키워냈다. 이런 자연경제의 바탕 위에 '공동체적 생활양식'이 뿌리를 내렸다. 아다시피 자연경제에서 중심가치는 사용가치다. 사람들은 그 자체가 자연력의 일부인 공동 노동력을 기울여 자연의 힘을 '쓸모 있느 것'을 기르고 만드는 데로 돌렸다. 살아가는 데 직접 간접으로 요긴하게 쓰이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노동력도 자연력도 쓸모 없이 낭비되거나 탕진되는 일이 없었다. 도성이나 관아에 궁궐이나 관청을 지어놓고 인간의 노동력과 자연력을 착취하여 낭비하고 탕진하는 지배계급이 기생하고 있었지만 그 기생충들도 자연경제의 틀을 벗어나 살 수는 없었다.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꽃피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술과 과학의 성과가 축적되었지만, 그 어느 것도 사용가치가 없는 것, 공동체적 생활양식을 뒷받침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 '기르는 문화'의 중심축은 농사꾼이 이루고 있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이와는 달리 '만드는 문화'의 숨은 주체는 자본이다.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을 통해서만 자기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자본은 대도시라는 자연과 격리된 인공의 섬 이에서 '만드는 문화'의 드러난 주체인 '만드는 사람', 자본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상품경제의 틀 안에 '자본주의적 생활양식', 개인주의적 생활양식을 빚어냈다. 아다시피 상품경제의 중심가치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다. 자본은 자기증식을 위하여 교환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만들어낸다. 사용가치가 전혀 없는 것도, 인간의 건강한 삶에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로운 것도, 돈만 된다면, 다시 말해 이윤창출을 통한 자기증식이 가능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만들어 내고 누구에게든지 판다. 따라서 인간 노동력도 자연력도 자본증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낭비되고 탕진된다. '만드는 문화'에서 살아 있는 인간 노동력과 자연력은 죽은 노동, 죽은 자연의 최종 응결체인 자본으로 전화되어 그 일부는 고정자본이 되고 다른 일부는 유동자본이 된다. 도시를 가득 채운 고층빌딩의 숲은 죽은 노동력과 자연력의 비석이요, 은행과 증권거래소에 가득 쌓인 화폐와 유가증권은 산 노동력과 자연력을 추상화된 임금노동과 원료로 바꾸어 '상품'으로 고정시킬 응고제이다.
'만드는 문화'는 인간과 자연까지도 상품화하여 시장으로 끌어내고 '공동체사회'를 해체시켜 '이익사회'로 바꾸어낸다. '만드는 문화'의 중심축은 소수의 자본가, 그 가운데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재벌'들이고, '다국적기업'들이다. 이 인격화한 자본은 현재에도 온 세계를 상품시장으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우루과이라운드'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기르는 문화'에서 묵은 것, 오래된 것이 좋은 것이라면 '만드는 문화'에서는 새 것, 최신의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기르는 문화'가 인간의 욕망을 순환하면서 성장하는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면 '만드는 문화'는 자본의 무한증식 욕구에 따라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확대시키고 분화시킨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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