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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생명을 살리는 농업 1

독립출판 무간 2016. 8. 20. 19:41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재료를 써서 튼튼하게 지은 집도 곧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살림도 마찬가다. 기초살림이 부부실하면 한때 흥청대던 사람도 곧 거덜이 난다. 나라 단위로 볼 때 기초살림은 '산살림'이거나 '들살림'이거나 '갯살림'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산지가 70퍼센트이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가 오랜 세월 농사를 근본으로 삼아온 나라여서 이 세 살림이 아울러 튼튼해져야 기초가 단단해진다. 이 기초상식을 무시한 채로 공업화 일변도로 나라살림을 꾸려온 결과 30년도 안 되어 이제 산도, 들도, 바다도 오염될 대로 되어 죽어가거나 버림 받은 땅으로 방치되고 있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경운기도 들어가지 않는 계곡이나 산자락에 있는 땅을 구하고, 거기에 보리, 밀, 콩 같은 주곡을 심고, 제초제와 농약과 화학비료는 물론이고, 유기질 비료까지 항생제와 호르몬제가 섞인 사료를 먹여 키운 가축의 분뇨가 섞인 것이라 하여 쓰지 않는 것을 보고, 동네 어른들은 걱정도 하고 웃기도 했다. 그 중에는 "저 사람들 몇 해 못 버티고 다시 떠날 거여"하고 손가락질하는 분도 있었다. 아직 군불을 때거나 연탄 보일러로 방을 덥히는 빈 집을 골라 살면서 산에서 나무를 하고, 또 토담집을 짓고 구들을 놓아 난방을 하겠다고 내변산 수몰지구에 가서 구들돌들을 모아오는 모습을 보고는 세상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농사를 짓는지 풀밭을 가꾸는지 모를 정도로 풀이 무성한 우리 밭을 보고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다고 야단치지 않는 분이 없었다.

 

그러나 60년대 이전의 농촌 생활양식을 모범으로 삼아 거기서부터 출발하자는 데는 우리 나름대로 뜻이 있었다. 농사짓는 일에 환상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대학 마치고 조교생활을 하다가 농촌으로 들어간 제자 부부가 2년 동안 투기영농을 하다가 5천만 원의 빚을 지고 결국 손 털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좋은 교훈이 되었다. 지금도 텔레비전을 보면 농촌현실을 왜곡하여 농촌에 들어가 살면 마치 떼돈을 벌 길이 있는 것처럼 환상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이 종종 방영되고 있다. 이를 테면 제주도 어느 지방에서는 비파를 심어 목돈을 만지고, 경상북도 어느 지방에서는 수박에 당도를 높여 높은 소득을 올리고, 경기도 어느 지역에서는 꽃으 길러 도시 봉급 생활자가 꿈도 꿀 수 없는 큰돈을 벌었다는 식이다. 이런 프로그램에 현혹되어 처음부터 투기영농에 잘못 발을 들여놓은 귀농 희망자들 가운데 성공하는 예는 백에 하나도 없다.

 

얼마 전에 우리가 구한 산비탈밭은 그야말로 망초밭이었다. 망초라는 풀에는 유래가 있다. 초나라가 망할 때 온 산과 들에 하얀 망초꽃이 피어 초나라가 망하는 전조를 보였다고 '망초'라고 불렀다 한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아하, 나라가 망하려면 그런 징조도 나타나나 보다"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한 묵은 땅이 망초밭인 것을 보고, 또 묵혀놓은 밭에는 한결같이 맨 처음에 망초떼가 기승을 부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이 우연한 자연의 이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의 초한전쟁은 십 년 가까이 끈 전쟁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논과 밭을 일구던 젊은이들이 하루 아침에 전쟁터에 끌려가 평소에 낫과 괭이를 들었던 손에 창과 칼을 들고 싸워야 한다.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 농사지을 힘이 있는 장정들은 차례로 끌려나가 싸움터에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그 젊은이들이 일구던 밭들은 묵정밭이 된다. 곡식을 심지 않은 땅에 맨 먼저 들어서는 풀이 망초다. 곡식이 자라던 땅에 망초꽃이 하얗게 피는데, 그리고 농업생산을 기초로 해서 나라살림을 꾸려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애써 가꾸던 땅들이 농사지을 젊은이들이 없어 황무지가 되는데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먼 옛날 다른 나라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땅에 해마다 망초밭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까닭은 지나치게 예민해서일까?

 

경운기가 들어가지 않는 산비탈의 망초밭을 산 것은 값도 값이려니와 그 땅을 다시 살아있는 인간의 땅으로 바꾸는 일이 '들살림'과 '산살림'을 아울러 잘하는 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망초밭을 괭이로 일구고 씨앗을 부렸다. 더덕씨도 뿌리고, 참깨와 메밀도 뿌렸다. 그러나 뿌린 씨앗이 잘라기도 전에 온 밭을 먼저 덮는 풀들이 문제였다.

 

지난 해에는 그야말로 풀이 원수였다. 그러나 올 삼월 마늘밭에 난 '잡초'들을 뽑아던지다가, 밭에 나는 풀들이 모두 제초제를 써서 말려 죽이거나 김을 매어 없애야할 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마늘 밭에서 뽑아 내던져버린 '잡초'가 사실은 봄나물이자 몸에 좋은 약초였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 뒤로는 우리 밭에 자라는 풀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약초도감과 식물도감, 한의학서적, 동의학 백과사전 같은 구할 수 있는 책들은 다 구해서 풀의 성분들을 연구해나갔다. 그 결과 밭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풀들이 약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난 해 농촌의 빈집과 함께 버림받은 항아리들을 500개쯤 구해 효소식품도 담고 감식초도 담은 경험을 살려서 밭에 나는 풀들을 뽑거나 베어서 효소를 담기 시작했다. 민들레, 씀바귀, 쑥, 억새, 엉겅퀴, 조뱅이, 살갈퀴, 명아주, 쇠비름, 바랭이, 망초, 칡 무엇이든 눈에 띄는 대로 황설탕에 절여 40여 종의 풀들로 효소를 담고, 거기에서 나온 건더기에는 술을 부어 숙성시켰다. 그야말로 풀농사를 지은 셈이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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