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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농업이 잃어버린 생명의 시간이 농사에는 아직 흐르고 있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20. 19:38

 

농사라는 말을 농업과 구별해서 생각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농업은 경제 시스템 속에 있는 산업의 한 분야이고, 시장경제에서 산업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둘러싼 경쟁을 그 원리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농업을 존립시키기 위해서는 개개 농가와 농민이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에 비해서 농사는 농업이라는 시스템 속에 편입되어 이전부터 오랜 시간 인류 역사 속에 존재해 온 생활 양식에 가까운 의미로 보인다. 최근 일본에서는 '농적 생활'이라든가, '농사체험'이라는 표현이 심심치 안게 쓰이고 있다.

 

1970년대부터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산지 직거래 운동을 일으키고, 후일 카모가와에 자연 왕국을 설립, '농적 생활'으 모델 조성에 힘써온 후지모토 도시오는 2002년 세상을 뜨기 직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산업으로서의 농업이 현대인의 생존에 있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농사를 회복하는 일 역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식량 확보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인간으로서의 생존과 밀접히 관계되는데, 이는 이간이 이중의 의미에서 공동체 속에 자신을 재정립하는 일이라고 한다. 생명 공동체인 생태계와 그 곳의 먹이사슬, 그리고 그 공동체에 순응하여 살아가야 할 인간 공동체와 그 곳에서 전개되는 경제활동, 이 두 가지 생명의 연결고리 속에서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후지모토에 따르면 이 '존재증명'이야말로 현대의 키워드다.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의 귀농 지향에도 그러한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닌가.

 

'농사체험'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음을 나 역시 피부로 느끼고 있다.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워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에서부터 커뮤니티가든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사람, 취직을 하더라도 주말농장이라도 찾아가고 싶어하는 사람, 종자 보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 여름방학에는 농촌 봉사나 농촌 체험을 하고 싶다는 사람, 그리고 농촌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농사와는 별 인연 없어 보이는, 나의 대학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전업으로서의 농업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농업 또한 다른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제 시스템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틀이다. 이러한 생활을 동경하거나 실제로 여기에 참여하는 젊은이들 대부분은 산업사회의 틀 속에 자신을 끼워넣는 일 자체를 피하고 있다. 아마 그들은 '농사'에는 산업이나 경제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생명의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는 듯하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산업사회의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강하게'라는 신화가 깨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단지 아직은 그것을 대체할 만한 다른 이야기를 자신들이 만들어 갈 수 있을지 혹은 만들어 가도 좋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농촌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의 무리는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곳곳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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