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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생명을 살리는 농업 4

독립출판 무간 2016. 8. 20. 20:13

어떤 상품이 사용가치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인간사회와 생태계에 이로운 것이든 해로운 것이든, '만드는 문화'의 숨은 주체인 자본은 확대재생산을 통한 자기증식(이것이 자본의 생명이다)을 위해 끊임없이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상품의 구매자가 어떤 물건을 사서 그 상품이 사용가치가 없다는 것을 빨리 발견하여 버리면 버릴수록, 그리고 그 상품의 수명이 단축되어 쉽게 낡아 못쓰게 되면 될수록 좋다. 상품에 어느 정도 내구성이 있어서 내다버리는 데 저항감이 있으면 이 저항감을 없앨 심리적 동기를 유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만드는 문화'는 끊임없이 '새 것이 좋은 것'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내고, 이 신화가 깨지지 않도록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패션쇼' '첨단상품 전시회' '아이디어 제품' '유행가' '금주의 가요 톱텐' '신도시 개발' 대통령의 입을 빌려, 국회의사록을 통해, 경제장관 회의석상에서, 텔레비전의 영상과 신문의 기사를 이용해, 광고와 방문판매원의 발까지 동원해 자본은 자기 명맥을 유지하려고 필사의 힘을 다한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 대로다. '만드는 문화'와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이 인류와 생명계 전체에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과학기술의 남용이 불러온 이 위기상황을 과학기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작관하던 사람들도 이제 점점 더 비관적 전망을 하는 쪽으로 체계화된 제도교육의 기능에 대한 회의도 전세계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교환가치가 유일한 가치척도가 된 상품경제 사회가 만들어낸 상품들이 인간노동력과 자연력에 치명적인 훼손을 입히면서 지구 전체를 쓰레기장으로 바꾸고 있는 현실을 두고 개탄하는 사람은 많지만 어떻게 해야 이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바른 처방을 제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이 위기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은 가치관의 문명사적인 대전환에 있다고 본다. 교환가치가 중심인 '만드는 문화' 대신에 다시 사용가치가 중심인 '기르는 문화' 쪽으로 가치의 중심이 이동하고, 현대 문화와 생활양식의 숨은 주체 노릇을 해온 자본을 몰아내고 자연을 주체의 자리에 다시 세워야 한다고 본다. '만드는 문화'에 사형선고를 내리자는 말은 아니다.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만드는 문화'는 공동체적 생활양식에 알맞게 변용될 수 있다.

 

내가 산과 들과 바다가 어우러진 곳에 내려와 농사짓고 사는 것은 전인류의 기초살림이기도 한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을 튼튼히 꾸려 그 기초 위에 '기르는 문화'와 '만드는 문화'가 균형 있게 다시 세워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뜻과 의지가 농업에 반영되면 어쩌면 그것이 넓은 뜻에서 '생명을 살리는 농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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