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생명을 살리는 농업 2 본문
올해는 논에 우렁이를 넣어 김 한 번 매지 않고 벼를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다른 집에서는 모두 콤바인을 써서 베어 자동으로 탈곡까지 하는데, 우리는 변산 일대에서 유일하게 낫으로 벼를 베어 논둑에 말렸다가 지금 아무도 쓰지 않는 탈곡기(경운기와 피대줄로 연결하여 탈곡하는 기계)를 얻어다가 벼를 털었다. 지난 겨울에 심은 밀과 보리는 김을 매주지 않아도 저절로 자랐다. 다른 풀들이 올라오기 전인 겨울에 싹트고 자라기 때문에 따로 김을 맬 필요가 없었다. 콩밭과 그 밖에 다른 채소를 심은 밭에는 풀들이 무성해 김을 매주어야 했으나, 그 풀 가운데 일부는 발효식품으로 만들었으니 풀과 싸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농사를 짓다보니, 전통방법으로 유기농을 제대로 하려면 토종 씨앗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토종 씨앗을 구해 밭에 뿌리면 개량종에 견주어 소출은 적지만 소출이 안정된다. 그리고 영농비에서 수월찮은 몫을 차지하는 씨앗값을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토종 씨앗들은 오랜 세월을 두고 다른 풀들과 같이 사는 길을 터득해왔기 때문에 따로 농약이나 제초제를 뿌려 보호해줄 필요가 없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이것 또한 영농비를 줄이는 길이요, 땅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토종 씨앗을 구하려니 뭍에서는 구할 길이 없다 한다. 자급자족을 하는 외딴섬에나 아직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까운 일본 같은 데서는 강인한 토종 씨았에서 새로운 품종을 얻으려고 일부러 재래종 씨앗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데, 우리 나라는 토종 씨앗을 구하려 해도 구할 길이 없으니 참 큰일이다 싶었다. 그렇다고 농사일을 제쳐두고 외딴섬을 찾아갈 형편도 안 되었다. 중국 연변에 사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북간도 지방에 보존되어 있는 토종 씨앗들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여 올해는 스무 종 가까이 얻었다.
영농비가 따로 필요 없는 농사, 생활비가 최소한으로 드는 생활양식, 자연이 큰 스승이 되고 마을 어른들이 작은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삶에 필요한 정보를 실천을 통하여 얻게 하는 교육, 자급경제의 터전에서 꽃피는 '기르는 문화', 이것만이 기초 생활공동체가 길게 살아남는 길이요, 마침내는 땅도 살리고 그 땅에서 자라는 모든 생명체들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길이라는 생각이 얼핏 보기에 30년 전으로 퇴보하는(?) 농사법, 생활양식을 고집하게 하는 동기이다.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자연에는 쓰레기가 없다. 자연에 쓰레기가 없다는 것은 자연에는 낭비가 없다는 말과 같다. 낭비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 상품경제 사회에서 낭비는 곧 돈을 헤프게 쓰는 것, 곧 금전의 낭비로 나타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자연력의 낭비고 인간노동력의 낭비다. 그리고 크게 보면 이 모든 낭비는 생명력의 낭비, 곧 인간과 자연을 죽이는 일을 뜻한다.
자연을 닮은 삶의 양식은 낭비 없는 삶의 양식, 곧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다시 말해 '생명을 살리는' 삶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낭비는 크게 보아 '없어도 될 것', 더 나아가 없을 것(업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온 산하를 뒤덮는 쓰레기는, 따지고보면 낭비의 산물이요, 낭비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지표다. 오늘날 인류 전체가 쓰레기 공해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상품경제 사회가 없어도 될 것, 없을 것을 얼마나 많이 생산해 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노동력과 자연력으로 대표되는 생명력을 얼마나 많이 낭비했는가를 보여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없을 것이 넘쳐나서 무더기로 버려지는 세상은 다른 한편으로 있을 것(있어야할 것)이 그만큼 없는 세상이고, 또 거기서 오는 결핍감이 욕구불만으로 쌓이는 세상이기도 하다. 삶의 활력이 쓸데없는 쓰레기를 만드는데 소진되는 만큼 생명력의 응결이라 할 수 있는 자기정체성은 그만큼 사라지고, 자기소외가 심화될수록 욕구불만과 무력감을 그에 비례하여 커진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 함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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