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인디언 타임... 중요한 건 시계가 아니라, 상황과 형편에 따른 배려다! 본문

사는 이야기

인디언 타임... 중요한 건 시계가 아니라, 상황과 형편에 따른 배려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1. 21:42

내가 2년 전에 죽은 모호크족의 장로인 월터 데비드의 무덤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의 양아들인 존 쿠리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내가 묘지를 늦게 찾은 것에 대해 사과하자, 그는 J.R.톨킨의 <반지의 제왕> 가운데 한 토막을 들려 주었다.

 

마법사가 지각한 데 대한 책망을 듣자 이렇게 말한다. "아니 아니, 우리 마법사들에게 지각이란 있을 수 없지. 언제든 우리가 도착한 때가 우리가 도착해야할 시간인 거야." 그러면서 존은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인디언들은 언제나 백인들로부터 '늦었다'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우리들 입장에서 보면 '도착해야할 때 도착했을 뿐'인데도 말이죠."

 

존의 말처럼 북미의 백인들은 원주민을 볼 때마다 항상 '멍청하고 굼뜬 인디언'이라고 욕을 해왔다. 그 때문인지, 우리들이 1999년 '나무늘보 친구들'을 결성했을 때, 인디언 친구들은 그 소식을 듣고 일제히 대환영의 뜻을 보내주었다. 마침내 '멍청하고 꿈뜬' 우리들의 시대가 찾아온 셈이다. 쿠와쿠와카와구족의 글로리아 크랜머는 냉소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유럽인들이 들어온 이후로 우리들은 언제나 재촉당해 왔다. 무엇을 위해 서둘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향해 그들은 '그렇게만 하면 너희들은 모두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자아, 보라. 그토록 풍요로웠던 바다는 돈 많은 백인들이 바닥까지 훑어가 버린 결과 저렇게 황폐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마저도 '나무늘보 친구들'의 쿠와쿠와카와구족 지부가 오늘밤, 내 집 거실에서 결성되었음을 선언하노라!

 

블랙푸트족을 방문했던 때의 일이다. 그들 거류지 안의 선물가게 안에는 다양한 인디언 물건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특별히 내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 그것은 기묘한 시계로,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이 정확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숫자는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적혀 있었다. 왼쪽에 3이 있는가 하면, 아래쪽에 12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글자체와 글자 크기도 모두 제각각. 이 시계의 이름이 '인디언 타임'이라고 했다.

 

인디언 타임. 원주민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시간이 언제나 북미 사회의 표준 시간보다 늦다는 점을 원주민들 스스로 얼마쯤은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원주민 마을을 방문해 보면, 하이다족에게는 하이다 타임, 호피족에게는 호피타임, 아이누족에게는 아이누 타임이 있게 마련이어서 약속시간에 1시간 정도 늦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로 여긴다.

 

'인디언 타임'이라는 말 속에는 바보 취급을 당해 온 그들이 역으로 자신을 바보 취급해 온 사람들을 향해 보내는 비웃음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자신들에게 가해져 온 모욕적인 언사인 '굼뜨다', '느리다' 같은 이야기를 표면적으로는 받아들였지만, 속으로는 주류 사회의 기계적이면서도 융통성 없는 시간 감각에 대해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내 친구인 모호크족의 엘렌 가브리엘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호피족의 격언 가운데 이런 것이 있지. '인생에 있어 가장 긴 여행. 그것은 머리에서부터 마음에 이르는 여행'이라고. 머리만으로 생각하는 빠르고 경박한 사고를 전통문화는 높이 평가하지 않았지. 중요한 것은 충분한 학습 과정인 거야. 예를 들어 예의라든가 관습이라든가 생활기술을 익히는 방식들은 멀리 돌아가고 시간이 걸리고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문화가 생생히 이어져 온 것은 그러한 학습 방법 덕분이었다고 생각하네. 거기서는 느낌이 바로 키워드인 셈이지.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