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빠빠라기... 우리는 쓰고 남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 본문
슬로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빠빠라기>라는 책은 가장 좋은 교과서가 될 수 있다. 20세기 초, 사모아 근처 티아비아 섬의 촌장인 투이아비가 처음 방문한 유럽에 대해서, 그리고 그 곳에 사는 빠빠라기(문명인)에 관해서, 섬에 사는 자신의 동포들에게 들려 준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투이아비가 그린 빠빠라기의 모습은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 사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할 만하다. 빠빠라기들을 보면서 투이아비가 무엇보다도 놀랐던 점은 그들의 배금주의와 시간에 대한 기묘한 태도다. 투이아비는 빠빠라기가 시간의 관념에 붙들린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빠빠라기는 시간에 대한 아주 호들갑을 떨며, 너무나도 어리석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렇다고 해 봐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이상, 시간이 절대 더 있을 리 없는데도, 빠빠라기는 결코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을 향해 언제나 더 시간을 달라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투이아비를 당혹케 했던 것은 빠빠라기가 시간을 시, 분, 초로 잘게 나누고 마침내는 그것을 산산조작 내어 버린다는 점이다. 게다가 어른에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그렇게 잘게 나눈 시간을 재는 기계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
유럽에서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어쩌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던져진 돌처럼 평생 동안 바쁘게 산다. 거의 모든 사람이 걸을 때 바닥을 보고 다니며 될수록 빨리 걷기 위해 팔을 앞뒤로 힘껏 내젓는다. 누군가 잠시 붙잡으면 그들은 못마탕해서 소리친다. "왜 방해하는 거야? 난 시간이 없어. 시간이 있는 너나 그렇게 해."
투이아비는 유럽에서 딱 한 번 한가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가난했고,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했으며, 사람들은 그에게 항상 거리를 두고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았다. 투이아비는 오직 그 한 사람만이, 늘 불쾌한 얼굴로 무엇에 씐 듯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다른 빠빠라기들과는 달리, 천천히 걷고 부드럽고 친밀감 있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노라고 했다.
빠빠라기는 시간의 뒤를 필사적으로 쫓아가면서 시간에게 '잠시 햇빛을 쬘 시간조차도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투이아비는 말한다.
"내가 사는 사모아 섬에서는 누구 한 사람 시간에 불만을 갖는다거나 시간을 뒤쫓아 내달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시간은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고요함을 사랑하고 거적에 느긋하게 누워 쉬기를 좋아한다. 빠빠라기는 시간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은 그것으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거친 태도로 잘못 다룬다.
투이아비의 말처럼, 시간에 대한 빠빠라기의 태도는 일종의 광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광기는 투이아비의 연설이 있은 지 80년이 지났음에도 흡사 전염병처럼 점점 더 무서운 속도로 세계를 뒤덮으려 하고 있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 현대 일본인들은 이미 중환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투이아비는 그러한 우리의 마음을 달래 주고, 어떻게든 우리를 그러한 광기로부터 구해 내고 싶어한다.
우리는 저 불쌍하고 정신이 혼란스러운 빠빠라기들이 광란에서 벗어나 시간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들이 갖고 있는 작고 둥근 시간 기계를 깨부시고, 인간이 필요로 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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