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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 :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함께 사는 일은 점점 더 멀어진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1. 21:46

독일의 문명 비평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볼프강 작스는 대부분의 현대인이 '속도병'에 감염되어 있다고 한다. 어째서 이러한 병이 만연하는 것일까? 경제성장만을 우선하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의 세계에서는 가속이 성장을 채찍질하고, 성장은 가속을 더욱 촉진시킨다.

 

실제로 일본의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서둘러라', '빨리', '꾸물대지 말고...'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한다. 인생의 처음 10년 동안 그들은 과연 그런 말들을 몇 번이나 듣게 되는 것일까. 최근에는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가 바쁜 듯하다. 바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오히려 좋지 않다. 바쁘지 않은 사람들은 남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 인기 없는 사람,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 사람들은 바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한자의 '바쁠 망'이라는 글자는 마음이 없어진다는 의미인데, 이제는 오히려 바쁘지 않으면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여기는 듯하다.

미국의 예를 들어 보자. 한 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미국인 근로자들은 1970년대에 비해 연 평균 142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한편 미국인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노는 시간은 주당 평균 40분에 불과하다. 18세부터 64세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옛날에 비해 자유로운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45퍼센트에 이른다. 선진국 사람들의 시간을 더 절약해 줄 것이라 기대했던 현대 과학기술이 오히려 사람들은 더 바쁘게 만들고 있다는 역설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기동성'은 고도로 발전된 사회의 특징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그것을 이면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이 세계의 균질성이다. 도시에서는 특히 어디에 살든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이러한 고도의 '기동성'과 '균질성'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이 미국 사회다. 또한 그것은 다가올 세계화 사회의 모델이기도 하다.

 

미국 사회에서는 '바람직한 노인상'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자녀들이 고향과 부모 곁을 멀리 떠나 미국 각지나 혹은 해외에 떨어져 사는 모습을 꼽는다. 내가 방문했던 워싱턴DC의 카페테리아에 매일같이 찾아오는 말끔한 차림새의 노인들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자식들 자랑을 내게 자주 하곤 했었다. 예를 들어 장남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서 컴퓨터 기술자로 일하고, 차남은 M.I.T.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차녀는 뉴욕의 월 스트리트에서 일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작스의 지적처럼, 우리들의 시대는 '움직이는 일'에 매혹되어 있다. 그리고 더 빨리 움직이는 것만을 생각한다. 고도의 기동성이 마치 성공의 징표라도 되는 듯하다. 더 빨리 도차하고, 더 빨리 떠나는 일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사이, 우리는 '머무는 일'의 치를 잊어 버렸다. 우리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삶의 어려움들은 아마도 이러한 문제들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움직이는 기술'에만 밝은 현대인들은 이제라도 '머무는 기술'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함께 사는 일' 또한 일종의 머무는 기술이자 지혜일 것이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함께 사는 일'은 점점 더 멀어진다. '함께 사는 일'이 인생의 본질적인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시 한번 '머무는 일'을 배워볼 필요가 있다. 아니면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는 일을 배우기 바란다.

 

'머무는 일'은 시간이 걸린다. '함께 사는 일'은 더욱 시간이 걸리며, 성가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이 없다면 인생이 과연 살아볼 만한 것일까.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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