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성현영의 노자의소 24. 기자跂者 본문
24. 기자跂者
跂者章所以次前章者, 前章正擧躁競之人, 執敎之失. 故次, 此章, 重明其義. 就此一章, 義有三別. 第一, 擧跨跂兩惑, 近繼驟雨前章. 第二, 重辨四迷, 遠對曲全四德. 第三, 擧譬, 勸令厭捨.
기자跂者 장이 앞 장 다음에 놓인 까닭은 앞 장이 “조급하게 다투는 사람은 ‘가르침’에 집착함으로써 (저절로 그러한 이치로움理를) 망가뜨리게 된다”라고 분명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장이 앞 장) 다음에 놓이게 되었는데, (따라서) 이 장은 그 의미를 거듭 설명한다. 이 한 장을 살피건대, 의미가 3개의 문단에 나뉘어 있다. 첫 번째 문단, ‘걸음을 크게 걷는 것’과 ‘발돋음하여 서는 것’ 모두 미혹된 바임을 설명하는데, 가까이 앞 (23)장의 “소나기”(에 대한 일컬음)와 연결된다. 두 번째 문단, 4가지 미혹됨을 거듭 설명하는데, 멀리 (22장의) “멈추면 온전히 일삼게 된다”거나 (“일부러 일삼아 살피지 않음不自見, 일부러 일삼아 옳게 여기지 않음不自是, 일부러 일삼아 취하지 않음不自伐, 일부러 일삼아 우쭐하지 않음不自矜”의) 4가지 덕스러움德(에 대한 일컬음)과 연결된다. 세 번째 문단, 설명하고 비유하는데, 싫어하고 버리기를 권하고 명한다.
第一, 擧跨跂兩惑, 近繼驟雨前章.
첫 번째 문단, ‘걸음을 크게 걷는 것’과 ‘발돋음하여 서는 것’ 모두 미혹된 바임을 설명하는데, 가까이 앞 (23)장의 “소나기”(에 대한 일컬음)와 연결된다.
跂者不久
(그 도道를 어그러뜨린 채) 발돋음하여 서는 사람은 (오래 가거나) 오래 보일 수 없다.
跂, 慕羡也. 言躁競之夫, 心非懷道. 不能任眞守素. 而分外羡欲. 然物有素分. 不可希跂, 旣乖其道. 豈得久長?
“기跂”는 바라고 부러워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조급하게 다투는 사람은 마음이 도道를 품지 못한다. (따라서) 참됨을 맡아두거나 소박함을 지켜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분수에 넘치게 부러워하고 일삼고자 하게 된다. 그러나 만물은 (모두) 소박함과 분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발돋음하여 서기”를 바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도道를 어그러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오래 보이거나 오래 갈 수 있겠는가?
跨者不行
(일부러 일삼아) 발돋음하여 서는 사람은 (오래) 걷지 못하게 된다.
跨, 謂矜傲也. 修道之夫, 應須謙遜. 方乃跨誔矜傲於人, 以此爲懷, 不可行道. 故莊子云, 寄鵬鵰以息跂. 又云, 權勢, 不久. 則夸者, 悲.
“과跨”는 우쭐함과 거만함을 일컫는다. 도道를 닦는 사람은 겸손함과 어우러져야 한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남보다 “걸음을 크게 걸음”, 남을 속임, 남에게 우쭐함, 남에게 거만함, 이것으로써 (마음에) 품는 바를 삼으면, 도道를 일삼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장자莊子』는 일컬었다. “붕새나 독수리에 (몸이) 맡겨짐으로써 (일부러 일삼아) ‘발돋음하여 서는 일’을 멈추게 된다.” 또한, 일컬었다. “(일부러 일삼은) 권세는 (오래 가거나) 오래 보이지 못한다. 비로소 (그것을) 자랑하던 사람이 슬퍼하게 된다.”
第二, 重辨四迷, 遠對曲全四德.
두 번째 문단, 4가지 미혹됨을 거듭 설명하는데, 멀리 (22장의) “멈추면 온전히 일삼게 된다”거나 (“일부러 일삼아 살피지 않음不自見, 일부러 일삼아 옳게 여기지 않음不自是, 일부러 일삼아 취하지 않음不自伐, 일부러 일삼아 우쭐하지 않음不自矜”의) 4가지 덕스러움德(에 대한 일컬음)과 연결된다.
自見不明.
일부러 일삼아 (옳음을) 살피면, (지혜를) 밝히지 못하게 된다.
不能忘我, 自見有身. 此乃昏愚, 非明智也.
(일부러 일삼음이 ‘있는’) 자신을 잊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일삼아 (옳음을) 살피게 되고, (일부러 일삼는) 자신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자신을) 어둡게 하고 어리석게 하는 일인데, (따라서 자신의) 지혜를 밝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自是不彰.
스스로 옳다고 하면, (그 덕스러움德이) 드러나지 못하게 된다.
心恒自是, 口每非他, 物共蔽之. 故其德不顯也.
마음으로 언제나 ‘내가 옳다’고 여기는 일, 입으로 언제나 ‘네가 틀렸다’라고 말하는 일,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덮어버린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그것을 일삼는 사람은) 그 덕스러움德이 드러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自伐無功.
(공功이 있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취하면, 공功이 없어지게 된다.
凡有所爲, 輙自伐取其功, 物皆不與. 故無功績.
이른바 (공功을) 일삼은 바가 있지만, 스스로 그러한 공功을 취하는 일, 사람들이 모두 더불어 하지 않는 바이다. 따라서 (그러한) 공功績이 없어지게 된다.
自矜不長
스스로 우쭐하면, (그 덕스러움德이) 오래 가지 못하게 된다.
矜誇自高, 驕慢陵物, 此乃愚短. 其德豈長乎!
우쭐하고 자만하여 스스로 높아지고, 교만하고 거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일, 이것은 (자신을) 어리석게 하고 모자라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덕스러움德이 어찌 (오래 보이게 되거나) 오래 가게 되겠는가!
第三, 擧譬, 勸令厭捨.
세 번째 문단, 설명하고 비유하는데, 싫어하고 버리기를 권하고 명한다.
其在道曰, 餘食贅行
(일부러 일삼아 옳음을 살피는 일自見,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自是, 스스로 공功을 취하는 일自伐, 스스로 우쭐하는 일自矜) 그것은 도道를 일삼는 데 있어서, ‘남은 음식’이나 ‘덧살’과 같은 행위라 일컬어진다.
餘食, 猶殘食也. 贅, 附生之肉也. 莊子云, 附贅, 懸疣也. 言矜誇自是之人, 其在道行, 實猶殘食贅病, 甚可厭賊也.
“여식餘食”이라는 말은 ‘남은 음식’이라는 말과 같다. “췌贅”는 (비유컨대 덧붙어 자라는 살 곧) ‘덧살’이다. 『장자莊子』는 (「대종사大宗師」와 「병무騈拇」에서) 일컬었다. “덧붙어 자라는 ‘덧살’, (비유컨대) 자라나는 사마귀이다.” 이른바, 우쭐하고 자만하여 스스로 옳다고 하는 사람, 그는 도道가 일삼아지는 데 있어서, 진실로 ‘남은 음식’이나 ‘덧살’과 같은 병病이자, 진실로 싫어해야 할 적賊과 같은 사람이다.
物或惡之, 故有道不處.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보기) 싫어한다. 따라서 도道를 가진 사람은 (그것에) 머물지 않는다.
贅, 是無用之肉. 誇, 是無用之行. 世間人物, 或惡見之. 故懷道之士, 豈處心於誇贅之行乎!
“덧살”은 쓸모없는 살이다. 자만은 쓸모없는 행위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보기 싫어한다. 따라서 도道를 품은 사람이 어찌 자만하는 일과 덧살과 같은 행위에 머물거나 마음을 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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