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성현영의 노자의소 : 17. 태상太上 본문
17. 태상太上
太上章所以次前者, 前章明至極妙本, 勸物起修. 故次此章, 顯應感隨時, 從本降迹. 就此章中, 分爲二別. 第一, 明根性不同, 機悟差異. 第二, 歡至德潛運, 知若不知.
태상太上 장이 앞 장 다음에 놓인 까닭은 앞 장이 (일부러 일삼음이 ‘없음’의) 끝점에 다다른 어렴풋한 근본을 설명하고,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일으키고 닦기를 권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 장 다음에 놓은 이 장은 설명한다. “(일부러 일삼음이 ‘없는’) 근기와 어우러지고 (어렴풋한 본체에 다다른) 지혜에 따르라, (어렴풋한) 본체를 말미암아 일부러 일삼아라.” 이 장을 살피건대, 나뉘어 2개로 갈라진 문단을 구성한다. 첫 번째 문단은 설명한다. “근기가 같지 않기 때문에 지혜가 차이나게 된다.” 두 번째 문단은 찬탄한다. “(어렴풋한 근본에) 다다른 (‘최상’의 근기를 가진 사람의) 덕스러움德은 (일부러 일삼음이 ‘없이’) 잠잠하게 일삼는데, (따라서 일삼는지 아닌지) 알 듯 모를 듯하다.”
第一, 明根性不同, 機悟差異.
첫 번째 문단은 설명한다. “근기가 같지 않기 때문에 지혜가 차이나게 된다.”
太上下知有之.
최상 수준의 근기를 가진 사람은 아랫사람이 (단지 그에 대한 명칭과 호칭이) 있다는 것을 안다.
太上, 卽是玄天敎主太上大道君也. 言道君, 在玉京之上, 金闕之中, 凝神遐想, 爲常應之處. 利根之人, 機性明敏, 深悟妙本凝寂. 體絶形名, 從本降迹. 故有位號. 不執相生解. 故言下之有之. 知有太上名號之所由也.
“(가진 근기의 수준이) 최상인 사람太上”은 비유컨대 현천교주玄天敎主인 태상대도군太上大道君이다. 말하자면, (태상대)도군道君은 옥경玉京의 위, 금궐金闕의 가운데, (일부러 일삼음이 ‘없는’) 신령스러움이 모여들어 있고 (일부러 일삼음이 ‘있는’) 형상이 멀어져 있는, (그러나) 언제나 (그것들의) 어우러지고 아우러짐을 일삼는 곳에 자리한다. 최상의 근기를 가진 사람은 지혜가 밝고 (따라서 알아차림이) 재빠른데, (따라서) 어렴풋한 근본을 깊이 깨달아 (일부러 일삼음이 ‘없는’) 잠잠함을 모여들게 한다. (어렴풋한) 근본이 (일부러 일삼음이 ‘있는’) 형상과 명칭을 벗어나 있는데, (따라서 어렴풋한) 본체를 말미암아 일부러 일삼음을 펼친다. 따라서 (가진 근기의 수준이 ‘최상’인 사람이라는) 위상과 호칭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아랫’사람은 일부러 일삼음이 ‘있는’) 형상이나 삶이나 평가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일컬었다. “하지유지下之有之.” “(‘아랫’사람은 ‘단지’ ‘윗’사람으로부터) 말미암아진 바로서 (가진 근기의 수준이) ‘최상太上’인 사람이라는 명칭과 호칭이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其次親之譽之.
중간 수준의 근기를 가진 사람은 (아랫사람이 그를) 아끼고 기린다.
中根之人, 機神稍闇. 不能忘言證理. 必須執相修學. 所以躭著經敎. 親愛筌蹄. 依文生解, 共相譽讚也.
중간 수준의 근기를 가진 사람은 (“최상” 수준의 근기를 가진 사람에 비해) 지혜가 (더) 느리고 (더) 어둡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음이 ‘있는’) 언어나 논리나 이치를 잊어버리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일부러 일삼음이 ‘있는’) 형상이나 닦음이나 배움에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경전과 교리에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비유컨대 ‘아랫’사람은) 통발과 올무를 “아끼고” 아끼게 된다. 문자에 의존해 (의미를) 해석한 채, 서로 서로 “기리고” 기리게 된다.
其次畏之侮之.
낮은 수준의 근기를 가진 사람은 (아랫사람이 그를) 두려워하거나 업신여긴다.
侮, 欺也. 下機之人, 性情愚鈍. 縱心遂境. 躭滯日深. 唯畏世上威刑. 不懼冥司考責. 所以欺侮聖言. 毁謗, 不信. 故德經云, 下士聞道大笑之也.
“모侮”는 업신여긴다는 뜻이다. 낮은 수준의 근기를 가진 사람은 (중간 수준의 근기를 가진 사람에 비해 지혜가 더 느리고 더 어둡다. 다시 말해) 지혜가 (없다. 다시 말해) 어리석고 둔하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음이 ‘있는’) 마음을 쫓고 (마음이 일부러 일삼아) 쫓는 모습이 된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음이 ‘있음’에 대한 마음의) 집착이 날로 심해지게 된다. (따라서 ‘아랫’사람은) 오직 세상의 (일부러 일삼은) 위세와 형벌만을 “두려워하게 된다.” (따라서 비유컨대) 명사冥司의 따짐이나 다그침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예를 들어 “최상” 수준의 근기를 가진 사람이 일컫는) 성스러운 말씀을 업신여기고 “업신여기게 된다.” (따라서 그를) 헐뜯고 헐뜯게 되며, (따라서 그를) 믿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41장은 일컬었다. “낮은 (수준의 근기를 가진) 사람이 도道에 대해 들으면 (그것을 믿지 못한 채) 크게 웃는다.”
信不足有不信
(윗사람에 대한 아랫사람의) 믿음이 부족해지고, 믿지 못함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良由下機障重, 信根不足, 故疑毁聖文, 有不信之罪也.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아끼고 기리며, 두려워하거나 업신여기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윗’사람의) 근기 수준이 낮음과 (그에 따른) 집착이 거듭됨을 말미암아, (‘윗’사람에 대한 ‘아랫’사람의) “믿음”의 근기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인의 말씀을 의심하고 헐뜯게 됨은 “(‘윗’사람에 대한 ‘아랫’사람의) 믿지 못함이 생겨남”의 허물이다.
猶其貴言
비유컨대, 윗사람이 (일부러 일삼은) 말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猶其貴重世俗浮僞之言. 故不信至道眞實之敎. 是以迷惑日久, 罪障滋深也.
“비유컨대, ‘윗’사람이” 거듭 세상이 받들어 높이고 일부러 일삼는 “말”을 (일부러 일삼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랫’사람이 일부러 일삼음이 ‘없는’ 어렴풋함의 끝점에) 다다른 도道는 참되며 실상에 어긋나거나 벗어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믿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비유컨대 세상의) 헤매임과 헷갈림이 날로 더해지게 되고, 허물과 집착이 더욱 심해지게 되는 것이다.
第二, 歎至德潛被, 日用不知.
두 번째 문단은 찬탄한다. “(어렴풋한 근본에) 다다른 (‘최상’의) 덕스러움德은 (비유컨대 ‘백성’에게 일부러 일삼음이 ‘없이’) 잠잠하게 이불을 덮어주는데, (따라서 ‘백성’은) 날마다 (그러한) 이불을 덮지만, (그러한 공功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功成事遂, 百姓謂我自然.
(백성이 저절로 그러하게) 살아가게 하고 자라나게 하라, (따라서) 백성이 “나 스스로 그렇게 되었다”라고 일컫게 하라.
亭毒, 之功成. 育養, 之事遂. 而至德潛被. 成功弗居. 故百姓日用, 而不知. 皆謂我自然得如此. 不知荷聖恩也.
(어렴풋한 근본에 다다른 “최상”의 덕스러움德이 “백성”을 저절로 그러하게) 살아가게 함, 이것이 “공성功成”의 뜻이다. 자라나게 함, 그것이 “사수事遂”의 뜻이다. 다시 말해, (어렴풋한 근본에) 다다른 (“최상”의) 덕스러움德은 (비유컨대 “백성”에게) 잠잠하게 이불을 덮어준다. (그런데 그러한) 공功을 이루지만, (그것에 대한 집착에) 머물지 않는다. 따라서 “백성”은 (비유컨대) 날마다 (그러한) 이불을 덮지만, (그러한 공功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따라서 일컫는다. “내가 스스로 그와 같음을 얻었다.” 성스러운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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