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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장에서 중요한 것은 고기의 질이 아니라, 도축하는 양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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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장에서 중요한 것은 고기의 질이 아니라, 도축하는 양이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3. 08:26

스트레스는 트럭에 싣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두운 우리에 갇혀 있던 돼지와 송아지와 숫소들은 대낮에 갑자기 눈부신 상태로 밖으로 끌려나와 가파른 비탈을 기어올라 비좁은 트럭에 타야 한다. 주변에선 사람들이 손을 휘젓고, 소리 지르고, 밀고 당긴다. 트럭에 오르지 않으려고 버티기라도 하면 가차 없이 등에 채찍이 떨어진다. 한바탕 소란을 치르고 트럭에 올라도 스트레스가 끝나는 건 아니다. 양들도 도중에 쉬는 곳에서도 물을 먹으려 하지 않고, 숫소는 성적으로 흥분해서 저희들끼리 올라타고 법석을 떤다. 송아지는 낯익은 여물통이 없어 쩔쩔 매고, 암소는 몇 시간 여행을 하다보면 젖이 불어 괴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도 문제이지만, 흔들리고, 이리저리 쏠리고, 시끄럽고, 덥고, 붐비는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운전기사도 스트레스 받기는 마찬가지다. 굽은 길도 조심해야 하고, 브레이크도 함부로 밟을 수 없고, 교통체증으로 옴짝달싹 못한 채 끝도 없이 밀려 서 있는 고속도로에서 한숨을 쉬어야 한다. 그러니 동물들이 공포에 질리고 당황하여 잘못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슈바르첸베크에 있는 BSI라는 연구소는 동물들을 도축할 때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 연구소의 한 수의사는 운동선수들에게 하는 방식을 돼지에게 그대로 적용해 보았다. 전극으로 이동할 때의 체온과 심장박동 수와 호흡수를 재고, 도축한 후에 PH수치와 전도율을 조사했다. 연구결과 동물의 수송 자체가 동물에게 대단한 스트레스가 될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동물의 스트레스와 고기의 질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축할 때의 상태가 고기의 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동물이 기분 좋은 상태일수록 고기 맛도 더 좋다는 것이다. 장거리 수송은 동물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고기의 질마저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

 

돼지는 순환계가 매우 민감한 동물이다. 따라서 기온이 높을 땐 문제가 생긴다. 돼지는 땀을 흘리지 않기 때문에 길고 무더운 여행을 하게 되면 반드시 샤워를 시켜야 한다. 체온과 PH수치는 수송의 피로를 알 수 있는 척도다. 돼지를 비좁은 장소에 몰아넣으면 체온이 순식간에 섭씨 40도에서 41도까지 올라간다. 정상적인 돼지의 체온은 섭씨 38도이다. 돼지를 트럭에 가득 싣고 도축장까지 두 시간을 달려 도축한 후 한 시간만 지나면 고기의 PH 수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마라톤 주자처럼 근육이 젖산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생기 없고 무르며 물이 줄줄 새어나오는 품질이 떨어지는 고기가 되고, 이런 고기를 구우면 오그라들고 질겨진다. 체온이 높고 산성이 지나치게 많으면 근육세포의 막을 상하게 하여 고기의 '수분유지력'이 급격히 감소한다.

 

BSI연구소는 수의사들은 난폭하게 운전하는 트럭 기사 한 명을 대상으로 그가 수송한 돼지를 조사해 보았다. 그가 운반한 돼지들은 원산지에 관계없이 모두 PH수치가 유별나게 낮았고, 고기 품질도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같은 방법으로 조심스럽고 엄격하게 운전하는 기사를 조사했다. 그들이 수송하는 동물의 육질은 훨씬 품질이 좋았다. 하지만 도축장에서 PH수치를 거의 재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기의 품질이 아니라 도축하는 양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에서 요구하는 규범에 맞추기 위해서는 가축 수송 트럭 기사들도 이젠 BSI의 연수과정을 거쳐야 한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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