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고기맛이 유죄 : 비, 풀밭, 카로틴... 톰 부르스 가다인 본문
애버딘앵거스의 원래 고향은 스코틀랜드의 퍼스와 인버네스 사이를 지난 그램피언 산맥의 동쪽 낮은 구릉지다. 1년에 넉넉잡고 여덟 달은 방목된 상태로 풍부한 풀과 이 지역을 온통 뒤덮고 있는 클로버를 뜯으며 보낸다. 비에 기분 좋은 목욕을 하든 우박과 진눈깨비를 맞든 이놈들은 기네스 맥주처럼 시커멓고 질긴 외피 때문에 변덕스런 스코틀랜드 기후에서도 끄떡없다. 또한 몸집이 작고 땅딸막하며 뿔이 없고 엉덩이는 풍만하며 등판은 넓적하기 때문에 육우로도 그만이다. 대륙의 종자도 쟁기를 끌기 전에 정확히 뭐 하던 놈들이지 그 용도를 알 수 없지만, 애버딘앵거스도 도대체 뭐에 썼는지 정체가 모호하기만 하다. 스코틀랜드인들에 따르면 애버딘행거스는 겨울에도 약해지는 법이 없다고 한다. 외피 아래에 있는 건강한 지방층 덕분에 몸무게가 조금도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끼는 봄에 태어나는데 여섯 달 동안 어미젖을 먹는다. 낳자마자 며칠 만에 젖을 떼어 사실상 고아처럼 만드는 다른 소들에 비하면 달라도 한참 다르다. 겨울 몇 달 동안 소들은 실내 사육장에서 지내며 사일로(저장탑)에 저장한 사료를 먹는다. 이 사료는 말려서 발효시킨 것으로 당밀이나 보리, 귀리, 감자가 많이 들어가 있다.
다른 대부분의 육우가 실내에서 여물통에 매인 채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시리얼 같은 응축 사료를 먹고 자라는 것에 비하면 훨씬 품위 있는 생활을 누리는 셈이다. 풀을 먹으면 확실히 고기 맛이 좋아질 뿐더러 풀에 있는 카로틴 성분이 지방질을 버터 빛이 도는 노란색으로 바꾸어준다. 그러나 아무리 슈퍼마켓에서 그런 고기를 갖다놓고 싶어 해도 사람들이 원하질 않아서 못한다. 아마도 사람들이 바라는 고기는 체리 같은 붉은색이 돌고 지방을 최소한으로 줄인 쇠고기일 것이다. 그런 고기는 시리얼을 먹인 소에서만 가능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고를 때 모양에 어느 정도 신경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도매업자들이 겉모양을 중요시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영국의 슈퍼마켓에 가서 비틀린 당근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라. 그러나 좋은 징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막스앤스펜서 같은 회사들은 스코틀랜드의 풀을 먹고 자란 애버딘앵거스를 팔고 있으며 흥미롭게도 이들의 판매량은 광우병으로 폭락하기 훨씬 전인 2년 전에 비교해서 어느 정도 올라간 상태다.
새끼를 낳지 않은 어린 암소와 수소를 기르는 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오로지 좋은 고기를 얻겠다는 의도 때문이지만, 이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다.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줄인 상태에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도축하면 고기의 질이 좋아진다. 애버딘샤이어의 글렌버비에서는 소들을 저녁에 도축장으로 옮겨 환경에 적응하게 한 후 새벽에 도축한다. 그렇게 하면 무엇보다도 고기가 연해진다. 과학자 해리스와 쇼트하우스의 말에 따르면 "식인종이란 말의 어원이 되는 카리브 인디언은 고기를 신선한 상태에서 먹는다. 시간이 너무 지나면 살이 경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기를 너무 빨리 냉장시크는 것은 좋지 않다. 연하고 촉촉한 고기를 만들려면 섭씨 3도에서 적어도 3주 정도 걸어놓아 자연발효를 시키면서 근육조직의 단백질을 분리시켜야 한다. 진공포장 같은 흔한 방법보다는 골격이 있는 상태로 걸어놓아야 고기 맛이 좋아진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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