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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지만, 비난도 없는 고기의 수송

독립출판 무간 2016. 8. 4. 11:05

고기의 수송

프랑크푸르트가 멀지 않은 고속도로. 발도르프로 나가는 나들목 부근을 순찰하던 경찰관에게 스페인에서 온 트럭이 눈에 띈다. 트럭 뒤에서 뭔가 이상한 액체가 떨어지고 있다. 경찰관은 트럭을 세우고 가까이 다가간다. 알고보니 돼지 피가 '새고' 있다. 운전기사는 도축한 돼지를 허용량의 두 배 가까이 실은 것이다. 돼지들은 눌리다 못해 부러진 창살에 박혀 있다.

동물들 먹이를 주는 헤그예샬롬(슬로바키아와 헝가리 국경) 동물휴게소는 언제나 차와 가축들로 붐빈다. 트럭 운전기사들은 이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트리스테나 라자, 크로아티아로 떠난다. 그 곳에서 동물을 다시 배에 실어 아프리카로 보낼 것이다. 하루 평균 119대의 트럭 가운데 겨우 여덟 대만이 규정된 시간에 동물 휴게소에 들어오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여기선 요령 좋은 사람만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동물들에게 사료나 물을 먹이기 위해 서너 시간 기다리는 건 보통이다. 성미 급한 기사는 아예 트럭 환기구에 호스를 들이대고는 동물들에게 물을 뿌리고 끝낸다.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사료도 주지 않고 그냥 출발하는 기사들도 있다.

레바논의 베이루트 항구. 독일에서 온 배 한척이 800마리의 소를 싣고 정박해 있다. 소들을 내릴 때면 지쳐서 쓰러지는 놈, 다친 놈, 이미 죽어서 아예 움직이지도 않는 놈 등 가지가지다. 체트데에프 방송 프로그램 <프론탈>의 제작진들이 이 모든 현장을 관계자들이 눈치 못 채게 필름에 담고 있다. 카메라는 뒷다리가 부러진 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황소 뒤를 따라간다. 이 장면이 독일로 전송되어 방영되면 이 소를 기른 농민과 육우 배급업자, 수출업자들 모두 보게 될 것이다. 그 황소는 계속 넘어졌다가는 다시 일어서고 또 넘어지곤 한다.

 

충격적이지만 비난도 없는

앞에서 언급한 내용 모두가 잔인하기 짝이 없지만,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 돼지, 양, 염소, 닭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 기자와 카메라맨 뿐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은 잠깐 분개하지만 다시 먹던 스테이크를 부지런히 칼질한다. 슈바르첸베크의 수의사 카렌 폰 홀레벤은 말한다. "도축장은 마지막 남은 금기예요. 옛날에는 짐승을 죽이는 일이 하나의 축제였죠. 이제는 아무도 하려 들지 않아요."

오늘날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자신이 먹고 있는 고기가 어떻게 수송되어 어떤 식으로 도축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대형 트럭의 환기구를 통해 애처롭게 하늘만 쳐다보는 그 눈길과 마주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끔찍한 현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1995년에 2억 7,700만 마리의 살아 있는 동물들이 유럽연합 내에서 이송되고, 1억 500만 마리는 유럽연합이 아닌 나라로 수출되었다. 동유럽의 사육산업이 붕괴되고 난 후 유럽연합의 수출 물량은 급격히 증가했다. 브뤼셀의 통계에 의하면 암소와 송아지의 수출은 1990년 이후 400퍼센트 증가했고, 특히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으로의 수출은 급격한 신장세를 보였다.

오래 전부터 독일은 터기와 레바논과 시리아에 소와 송아지를 고급해 왔고, 지금은 유럽연합 최대 수출국 자리를 놓고 아일랜드와 어깨를 겨루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럽연합 가입국이 아닌 나라로 수출하는 모든 도축업자들에게 막대한 금액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작년에는 300킬로그램 나가는 어린 수소 한 마리당 660마르크를 장려금으로 지급했다. 동물보호주의자들은 이 장려금을 가리켜 "뼈를 분지르는 대가로 주는 공금"이라고 비난했다.

사실 내막은 좀 더 복잡하다. 유럽연합의 장려금은 살아 있는 동물에게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게 도축된 고기에도 지급된다. 냉동고기의 수출은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고 또 동물들이 그만큼 고통을 덜 겪게 되긴 하지만, 다음 몇 가지 이유로 인해서 아직까지는 그리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는 형편이다. (중략)

이같은 이유로 인해 동물을 장거리 수송하는 관행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독일 내에서도 수백만의 동물들이 산 채로 이동되고 있으며, 도축장이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북부와 남부의 사소한 가격 차가 계속 생기기 때문에, 또 동부 독일의 도축장이 서부보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고기의 생산과 소비가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동물들은 여전히 트럭에 올라 이 나라를 오르내려야 한다. 그리고 '잔인한' 조건이 이 사업의 핵심 문제가 된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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