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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를 보존하는 일은 생태계를 지켜 내는 일이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20. 16:17

 

반다나 시바는 다국적기업에 의한 종자의 독점이 인류가 현재 직면한 최대의 위협이라고 한다. 지역 공동체가 주도하는 종자 보존 운동이 무엇보다 긴급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씨앗은 재생이라는 생명 현상의 핵이며, 생명의 재생 없이는 사회를 유지해 나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러나'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문제는 어지럽게 돌아가는 현대 산업사회에는 생명의 재생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생명의 재생을 기다릴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현대 세계를 뒤덮은 생태학적, 사회적인 위기는 재생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격하되어 있는 데에 기인하고 있다.

 

지구촌의 풍요로운 음식문화를 뒷받침해 온 재래 종자들이 최근 들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이제 세계 작물 종자의 30퍼센트는 다국적기업 10여 개 사가 독점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재래종을 취급하는 지역의 종자 회사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다국적기업은 수확량 면에서 유통에 적합한 1대 교배종을 개발하고, 다시 유전자 조작으로 새로운 종자를 만들어 농약과 함께 그것을 판매함으로써 시장 독점을 꾀해 왔다. 이러한 방식의 세계화와 균질화의 그늘에서 지역의 전통적인 음식 문화와 그것을 지탱해 온 종자, 그리고 전승 문화들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종자의 균질화와 함께 생물의 다양화에 의해 유지되고 있던 '생명 공동체'인 지역이 교란되고 쇠약해지고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 가운데 호주의 바이론 베이에 거점을 둔 '종자 보존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 공동체의 종자 부활과 종자 은행 설치를 호소하고 있다. 또한 지역들끼리 서로 연합하여 세계화에 대항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곳 대표인 팬튼 부부는 자신의 집 주변에 견본 정원이랄 수 있는 야채 농원을 두고,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정성어린 슬로푸드를 대접하고 있다. 그들에게 종자 보존 운동이란 각각의 종자가 갖고 있는 고유한 시간을 존중하는 일이다. 종자에는 긴 시간 속에서 배양되어 온 각 지역의 기후, 토양, 미생물 등과의 관계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씨앗을 뿌리고 기르고 다시 씨를 거두고 계속해서 보존해 온 수세대에 걸친 농민들의 지혜와 삶이 담겨 있다. 그래서 종자를 보존하는 일은 생태계의 시간과 문화의 시간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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