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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 : '노인은 노인답게, 아이는 아이답게'가 힘든 비정상 사회! (2)

독립출판 무간 2016. 8. 11. 19:56

이러한 성장과 생산성을 축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이미 생산적인 시기가 지나버린 늙음은 쇠약의 프로세스로 여겨지며, 노약, 노추, 노쇠와 같은 말의 이미지가 보여 주듯이 부정적이고 퇴행적이며, 가능하면 멀리하고 싶은 것, 회피하고 싶은 것으로 여겨진다. 와시다에 따르면, 이렇게 '어쩐지 싫은 생각이 드는' 노인을 어떻게든 사회의 틀 속에 무난하게 넣기 위해 사랑스럽고 귀여운 노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는 생산성이나 효율성 등과는 거리가 있는 유아나 아이들을 사랑스러움과 귀여움 속에 가두려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을 사회의 '현역' 이전 혹은 이후라는 시각에서 받아들이고,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존재로 강요한다.

 

노인에게 살기 힘든 사회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살기 힘든 사회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재촉당하고 있다. 인생의 최초 10년 동안 대체 몇 번이나 '서둘러', '빨리 해'라는 말을 듣고 ,'꾸물댄다', '굼뜨다'라는 욕을 듣는 것일까. 놀기라는 '비생산적인' 행위에 빠져 있는 아이는 "대체 그게 너에게 무슨 도움이 되니?"라는 질문을 수없이 듣게 될 것이다. 높은 교육열을 지닌 어머니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노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어머니는 놀기를 노후에나 해야 하는 일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과거 대가족 제도에서처럼 3세대가 한 집에 모여 사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도 특이한 일이다. 노인과 손자라는 격세대적 관계는 인간 문화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인 이노우에 히사시는 이렇게 말한다.

 

"생산적 세대인 부모를 중심에 두고, 노인과 손자라는 두 개의 비생산적 세대가 대칭적으로 결합되는 곳에 바로 문화적인 활력의 원천이 있었다. 그들이 화롯가나 이불 속에서 서로 몸을 부대끼면서 어깨를 주무르거나 옛날이야기나 하면서 실없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 가면서 문화적인 활력도 떨어지고 말았다."

 

와시다는 이노우에의 말을 인용하면서 노인과 아이의 격세대적인 유대가 실은 직설적이고 획일적인 시간에 기초한 사회 질서를 흔들고 무너뜨릴 만한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숙한 사회란 늙음이나 어림, 이 모두를 포함한 다양한 시간을 인정하고 관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상호의 관계를 배양해 나가는 사회라고 말이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로, 어름 그 자체를 간직한 채 빛나는 사회. 노인이 노인으로, 어른의 세계로부터 물러나 앉은 것이 아니라, '나이 듦'의 시기로서의 시간의 의미를 발견하면서 살아가는 사회. 이런 사회라야 비로소 성숙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문화인류학자인 다케무라 신이치는 인간의 본질이란 '아이'라고 지적한다. 평생 아이로 지내면서 언제든 새로운 자극과 학습에 이해 달라져 갈 수 있는 가소성에 바로 인간의 본성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라면 고령화 사회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다케무라의 말처럼 늙음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선물이다.

 

이제까지 '생산적인 어른'만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잘못 믿어왔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리가 이제까지 성가신 것으로 여겨 온 늙음이나 어림이 언뜻 보기에는 비생산적으로 느린 시간과 더불어 풍요로운 가능성으로 우리들 앞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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