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슬로 카페 : 차 마시고, 수다떨며, 느리게 딴지 걸기...! 본문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에 걸쳐 도코에서 청춘 시절을 보낸 내게 있어 다방이나 카페는 흡사 도회라고 하는 사막 안에 자리한 왕시스처럼 느껴졌다. 그 무렵을 떠올리면 나는 다방에서 살았다는 기분마처 든다. 간간한 스낵과 커피, 음악을 즐기고, 책, 잡지, 신문을 읽고, 편지나 시, 문학 따위를 쓰고, 사람을 기다리고, 토론하고, 잡담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쉬고, 잠시 졸고, 멍하니 앉아 몽상에 잠기기도 하던 장소였다.
그 때 그 곳은 근처 장인들과 마을 공장의 노동자들,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모이던 커뮤니티의 중심이었다. 동시에 그들 각자의 오피스이자 대합실이고, 휴게실이자 사교장이고, 심지어 거실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로부터 20~30년 사이 일본의 찻집 문화는 쇠퇴 일로를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 중 하나는 찻집 자체가 도시 공간의 활용법으로는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 자체가 격전을 치러야 하는 경제 경쟁 속의 비즈니스로서는 이미 부적당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 다시 일어난 카페 붐을 우리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예전의 다방 같은 공간이 재현된 것처럼 느껴진다. 예전의 다방 문화를 전혀 모르는 젊은이들이 카페 공간을 내 것인 양 점령해서 아주 친숙하고 익숙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젊은 날의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든다.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에 대한 바람은 쇠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중남미에서의 환경운동을 계기로 무농약, 유기농 커피의 공정 교역에 관여하게 되었고, 마침내 친구들과 어울려 환경 공생형 카페를 만들게 되었는데, 우리는 거기에 '카페 슬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세상에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카페나 레스토랑 혹은 바를 운영하고 있거나 앞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즉, 카레란 하나의 사회적 조류이며,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카페의 특징을 열거하여 정리한 것이 '슬로 카페 선언'이다. 이를 기본 컨셉트로 하여 앞으로도 새로운 슬로 카페를 세상에 내놓은 일에 일조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슬로 카페 선언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유기적인(organic) 카페입니다. 무농약, 유기농 커피의 보급을 통해 '남쪽' 생산자의 지속 가능한 지역 만들기, 그리고 일본 소비자의 건강한 식생활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페어 트레이드 가게입니다. 환경을 파괴하고 부와 빈곤의 격차를 확대하는 일방적인 세계화 대신 생산자와 소비자, 도시와 농촌, '남'과 '북',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 사람과 다른 생물들 간의 공정한 관계를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슬로 푸드를 만듭니다. 안전하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서 직접 만든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슬로 머니를 사용합니다. 이자를 낳지 않는 통화로서 지금 전 세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지역/대체 통화를 받아들여 공정하고 활기찬 지역 경제를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정보 카페입니다. 환경문제, '남북'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 교환의 장, 그리고 음악, 영화 등의 표현 활동의 장이 되기를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슬로 비즈니스를 꿈꿉니다. 투자, 기업, 판매, 소비 등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통해서 즐거움, 아름다움, 편안함 등의 가치를 사회에 되돌리기 위한 사업을 목표로 합니다.
무엇보다 슬로 카페는 느림보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합니다. 다가오는 환경 위기란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의 문화 위기이며, 라이프스타일의 파탄이라고 생각하여,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이고 친환경적인 관계에 기초를 둔 마음 넉넉한 생활 문화를 제안합니다.
슬로 카페는 '나도 이런 카페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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