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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 : 자연과 인간 사이의 공정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1. 07:33

사람들은 이제껏 '무역을 통해 나라와 지역이 서로 부를 교환하고 나누어 공존 공영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어 왔다. 하지만 무역 자유화와 세계화 경제가 진행될수록 부강해지는 나라와 지역, 그리고 빈곤과 환경 파괴에 허덕이는 나라와 지역 간의 격차는 더욱더 벌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무역의 불공정성을 묻는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이제까지 선진국 기업은 입지가 취약한 원료 생산국으로부터 헐값에 물건을 몽땅 사들여서 북반구의 시장에서 비싸게 값을 매겨 팖으로써  거액의 차액을 챙겨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남반구의 경제를 점점 더 선진국에 의존적이고 가격 변동에 취약한 상태로 만들어 왔다. 또 광산 개발이나 플랜테이션(서양인이 자본, 기술을 제공하고 원주민 이주 노동자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단일 경작을 하는 기업형 농업 경영)과 같은 대규모 단일 재배 농업 등은 생산지에 심각한 환경 파괴를 초래해 왔다.

 

이에 맞서서 선진국과 제3세계, 이른바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공정한 상거래를 제창하는 페어 트레이드 운동이 영국에서 시작됐다. 이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에도 확산되어 대도시 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로 그 시장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트레이드'는 교환, 교역, 무역을 뜻한다. 그리고 여기서 '페어'는 '공정한'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자.

 

남미에서 무농약, 유기농 커피의 공정 거래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회의장 연단 위에 '메르카도 후스토(Mercado justo)'라고 커다랗게 적힌 스페인 어를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영어의 '공정 거래'가 여기서는 '올바른 시장'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스페인 어 '후스토'는 영어의 just, 즉 정의를 나타내는 justice의 형용사다.

 

나는 이 '정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쟁에서 싸우는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정의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은 이미 잔뜩 피로 물들어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공정한'이라는 표현이 훨씬 낫다. 전쟁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전쟁이 '공정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들이 정의롭다고 주장하는 전쟁에서 실은 얼마나 많은 비열한 전술과 책략이 사용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올바른(just)'이라는 말이 '나야말로 옳다'는 식의 주관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데 비해서 '공정한(fair)'이라는 말은 '자신과 상대'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가치를 나타내는 말이다. 예를 들어 A와 B 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지려면 쌍방이 공정한 가격이라고 생각해야만 타협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트레이드'는 본래 쌍방이 '페어'라고 생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인데, 굳이 이것을 페어 트레이드라고 말해야만 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페어 트레이드라는 말의 출현은 현대의 무역이나 교역이 얼마나 불공정한 것인지를 역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공정한 교역은 무엇과 무엇 사이의 공정함을 말하는 것일까? 일본 커피 시장에서 공정 교역의 개척자인 나카무라 류지에 따르면,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 남반구와 북반구,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시골과 도시 같은 인간 상호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공정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의 형편에 따라 생태계의 존속을 위협하는 교역은 설령 그것이 생산자와의 합의 아래 행해진 것이라 해도 공정한 것이 아니다.

 

이 점은 더 나아가 지금 살고 있는 세대와 미래 세대 간의 공정함 역시도 중요하게 여겨야만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커피의 경우는 어떨까? 최근 커피의 과잉 생산으로 가격은 기록적인 저가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선진국의 커피 소비가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자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수입에 허덕이고 있다. 60개국 이상의 가난한 '남족' 생산국에서는 커피 농민의 난민화가 잇따르고 있다. 결국 사태는 점점 더 '북쪽' 구매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면서 몇몇 다국적기업만이 커다란 이익을 올리고 있다.

 

생산지의 농약 피해도 심각하다. 한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제3세계에서는 농작물 재배에 사용되는 농약 때문에 연간 약 300만 명이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농약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으며, 사망자만도 수만 명에 이른다. 또한 선진국 소비자를 위한 농작물을 생산하는 플랜테이션이 전세계 곳곳에서 산림 벌채와 토양 침식을 비롯한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면서 지역민의 생활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나카무라는 더 이상 페어 트레이드니 하는 말이 필요치 않은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페어 트레이드는 그러한 시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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