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유전자 조작 - 딥 에콜로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생물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본문
'딥 에콜로지(deep ecology)'는 노르웨이의 철학자 아르네 네스가 자신의 환경철학에 붙인 이름으로, 1970년대 이후 환경운동과 생태학 연구에 종사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갔다. '깊은(deep)'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근대 정신을 관통하던 인간 중심 사상을 뛰어넘는 것을 중심 테마로 삼고 있다.
이를 시간의 관점에서 말해 본다면, 인간 중심적 시간을 자연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이제까지의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을 자연의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딥 에콜로지는 '슬로 에콜로지(slow ecology)'의 다른 이름이다.
딥 에콜로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인류는 특별하지도 않고, 유달리 빼어난 종도 아니며, 다양한 종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우리는 자각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와 같이 자연계에 대해 특별 대우만을 요구해 온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지구에게 지워 온 막대한 부담을 조금씩이라도 줄여 나가야 한다. 어떤 생물이든 이 지구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들이 서로 얽히고 서로 의지함으로써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인간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자신도 그와 같은 생태계 가족의 일원이라는 관점에 서게 되면, 세계는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농업에서 토양 속의 생명체를 전멸시킨다든가, 돈이 되는 작물만을 키우기 위해 숲을 남벌한다든가 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현대 문명의 기반을 이루었던 과학기술에 대한 생각을 통째로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딥 에콜로지스트이자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어느 종이든 각자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소는 인간에게 우유를 제공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소의 가치를 단순히 그 역할로만 측정할 수는 없다. 모든 자연의 요소들은 본래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살아가기 위한 자기 조직화의 능력 자체가 바로 그들의 가치인 것이다.
이러한 점을 언제나 나에게 일깨워 주는 것은 인도의 시골입니다. 그 깊고 그윽한 품 속에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 양쪽 모두에 필요한 은혜를 계속해서 베풀어 온 것은 바로 인도의 어머니인 대지입니다. 그러나 그 위대한 관용에도 한계는 있어서 인간들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게 되면 대지는 마침내 우리에게 준엄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 <반다나 시바의 눈2>, <주간 금요일>, 2002년 7월 26일 자에서
인간은 '자신들에게 가치 있느냐 없느냐'는 것만으로 다른 종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려고 든다. 사람들에게는 '필요', '불필요'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풀은 잡초라고 부른다. 또 돈이 되지 않는 나무는 잡목, 곡식은 잡곡으로 지칭된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종이 아니라면 그것은 멸종시켜도 괜찮다는 생각조차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어떤 종을 멸종의 위기로 내모는 일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떠받치고 있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다. 또한 이러한 '필요', '불필요'의 사고방식은 더 나아가 '생명조작'의 사고까지 이끌어내게 된다. 자신들에게 어떠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종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 그 종의 설계도인 유전자를 조작하고, 왜곡하고, 개조한다. 그리고 제1차산업의 '더 빠르게, 더 많이'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 그 종에 내재하는 고유의 시간까지도 단축시켜 버리는 것이다.
시바의 지적에 따르면 이러한 선별이나 생명 조작 사상은 전체를 부분들로 환원시키고, 분해하고, 분석하는 근대과학의 방법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에 대해 딥 에콜로지는, 세계란 그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로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므로, 부분화나 세분화는 당치 않은 일이라고 본다. 사람 또한 그 전체로부터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일부다. 사람과 다른 종 - 그것이 식물이든 토양이든 소이든 양이든지 간에 - 사이에는 유대관계가 있고,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이 성립되어 있다. 이러한 생각을 전통적인 인도 철학에서는 '나는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표현한다. 타자를 포함한 자신, 타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인 자신, 이것이 바로 느리고도 깊은 생태학에서 '나'인 셈이다.
나는 충성을 맹세한다 '거북섬'의
땅에게,
그리고 그 곳에 사는 생물들에게
- 게리 스나이더, <살려 하고 살릴 수 있는 것들을 위하여> 중에서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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