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손끝농사 손끝음식을 되찾자! 본문
들꽃피는학교 학생들의 김장 김치 담기 수업 연 이틀째. 김장을 담아본 학생은 물론 없다. 요즘 대부분의 식당처럼 학교식당에서도 김지를 담그지 않는다. 공장에서 배달된느 김치가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김장김치의 재료는 그들이 재배한 배추다. 배추 크기도 모두 다르다. 퇴비가 고르게 섞이지 않았거나 수분이나 공기를 빨아들이는 속도와 양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한 어미에서 나온 자식들이라도 모두 다른 것처럼.
"어떤 배추가 맛있을까?"
"다 맛있어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재배한 것이니 맛있지 않을 리 없다.
"큰 것과 작은 것 중 어느 것이 더 맛있을까?"
"작은 게 맛있을 거 같아요. 큰 거는 싱거울 것 같아요"
배추 뿌리 끝에 칼집을 살짝 낸 뒤, 손으로 배추를 갈랐다. 쩍 갈라지자 모두 함성을 지른다. 나는 배추를 자를 때도 칼을 못 쓰게 한다. 식물에 금속성이 닿으면 상하기 때문이다. 작은 배추는 속이 더 노랗고, 큰 배추는 색깔이 연하다. 배추 속을 뜯어서 아이들에게 먹어보라고 권했다.
"작은 게 더 달아요"
"고소해요"
"배추에서 깊은 맛은 안 나?"
"작은 것이 깊어요"
이번엔 마늘과 생강도 직접 까게 했다. 마늘을 깐 다음 절구통에 찧는다. 믹서를 가져왔지만 마늘을 직접 절구통에 찧는 요령을 알려준다. 어떤 친구들에게는 도마에 마늘을 올려놓고 칼자루 끝으로 찧는 법을 알려주었다. 모두들 자기가 맡아 하는 일이 신기한 모양이다.
음식 만들기 수업은 까다로운 과정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다. 아이들은 땅에 씨를 뿌려서 그것을 가꾸어 먹는 방식을 알게 된다. 그들의 손끝이 담기 농사였고 그들의 손끝이 담긴 음식임을 스스로 알게 된다. 김치 하나를 담그는 데 필요한 공정들을 하면서 김치 한 조각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치를 먹지 않던 아이들은 자신이 담은 김치를 먹어보면서 신기해한다.
무를 썰면서 어떻게 해야 손가락을 다치지 않을지 궁리한다. 무채 써는 기계를 사용하면 속도야 빠르겠지만 그러면 궁리가 적어진다. 채칼을 사용하기 전에 장갑을 끼라고 했는데 끼지 않고 하다가 한 친구가 손을 다치기도 했다. 계량컵도 없고 저울도 없다. 저울을 사용하지 않는 것, 계량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두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눈대중'과 '손대중'이란다. 우리 부모들은 눈대중과 손대중으로 음식을 했어. 그건 이미 손과 눈에 익숙해졌다는 뜻이야. 요리시간에 보면 몇 그램, 몇 리터 하는데, 그러다보면 나중엔 저울 없이는 음식을 못하게 돼. 도구를 최대한 줄여서 사용하는 게 좋은 거야. 몸에 익혀야 하는 거지"
아이들은 손대중을 배우기 시작한다. 과하지 않는 눈대중도 배운다. 또 양념을 버무리는 요령도 가르친다. 양념이 빨갛게 만들어지면 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손이 서툴지만 바삐 움직인다. 정성을 다해 배추 속을 넣고 문지르고 감싼다.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배추포기를 들고 흐뭇해 한다. 이처럼 배운다는 것은 우리 몸이 무엇인가에 익숙해진다는 뜻이다. 그것을 '손끝'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텃밭농사를 짓는 회원들은 모두 자기가 지은 것이 맛있다고 한다. 내가 먹어보니 모두 맛있다. 화학비료를 넣어도 농약을 쳐도 자신이 기른 채소가 더 맛있다고 한다.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관심이 기른 채소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기운과 식물의 기운이 서로 통한 것이다. 생물의 신비스러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손끝을 통해 나의 다른 생명체에 전달되는 것이다.(중략)
음식도 마찬가지다. 내 손으로 만드는 음식은 버림이 없고 모두 맛있다. 예전에는 비닐장갑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음식을 했다. 무치는 반찬은 특히 손맛을 강조했다. 또 장맛이 그 집안의 맛과 기운을 결정한다고도 했다. 장맛은 손맛이 기본이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모든 재료를 손끝으로 다듬고 만드는 것. 음식은 쇠붙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화학제품을 싫어한다. 흙으로 만든 질그릇이나 목기를 좋아한다. 생명체는 생명체끼리 연결되는 것을 좋아하니까.
손끝농사, 손끝음식. 우리가 되찾아야할 것은 손끝농사와 손끝음식이다. 기계에 익숙해진 머리로는 창조적인 발상이나 행동을 할 수 없다. 암산 대신 전자계산기를 쓰고, 단축번호를 눌러야만 전화를 할 수 있고, 내비게이션이 있어야만 길을 찾아가는 생활방식에 젖어서는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기억도 창의성도 점점 사장될 뿐이다.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다. 기계나 문명에 종속되면 몸은 비대해지고 병들어가게 마련이다. 어쩌면 인간은 기계와 프로그램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자연이 준 몸과 머리를 잘 사용하면서 몸과 마음의 언어를 읽고 자연과 교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손끝농사와 손끝음식이 절실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변현단 글 / 안경자 그림, "약이 되는 잡초음식,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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