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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산책 : 노자에게는 우리가 놓쳐버린 미래가 있다!

독립출판 무간 2017. 2. 11. 12:59

중국 노자老子 철학 연구자로서『도덕경道德經』을 읽어오면서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논설들을 들어오면서 한 가지 아주 상식적인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리고 그렇다면 노자가 말하는 도道는 무엇인가 (덕德은 무엇이고, 무위無爲는 무엇이며, 자연自然은 무엇인가).’ 아이러니하지만,『도덕경』에서 노자는 도를 ‘무엇’으로 정의定義하고 있지 않다. 도는 ‘이러하다’거나 ‘저러하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왕필王弼(AD.226~249)과 하상공河上公을 비롯한 후대後代의 수많은 주석가들이 도에 대해서 실체, 본체, 근원, 정기精氣 등으로 주해註解했지만, 그것들에 대해서 만족할 수 없었다. 주석가들마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달랐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노자의 것이라기보다 자신들의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양 철학사를 고대·중세·근대 등으로 나누는데, 그렇게 나누는 기준은 한 시대인들끼리 공유했던 철학적 문제의식의 차이이다. 학자나 학파에 따라서 이론들 간 차이가 있지만, 고대인들은 이 세계의 궁극적인 존재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데 모두 문제의식을 같이하고 있다. 중세의 이론들도 하나의 문제의식, 신神의 존재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두 일치한다. 근대의 합리론과 경험론도 그 안에 여러 갈래의 이론들을 담고 있지만, 세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라는 하나의 문제의식에 집중되어 있다.

 

중국 철학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중국 철학사를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BC.770~221), 한漢나라 시대(BC.206~AD.220년), 위진魏晋 시대(AD.220~420)) 등으로 나누는데, 그렇게 나누는 기준은 그 시대인들이 공유했던 철학적 문제의식의 차이이다. 춘추전국 시대 사람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간과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에 관한 것이었다. 이전과 다르게 전개되는 세계 속에서 사회는 어떠해야 하며,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내는 것이 시대적 과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과 정치 집단들이 그것에 대해서 다양하게 반응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비교적 체계적으로 반응했던 사람들이 공자孔子, 노자, 묵자墨子, 맹자孟子, 장자莊子, 순자荀子 등이었다.

이와 달리, 중앙 집권적 관료체제를 이룩했던 한나라 시대의 문제의식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역사까지 포함하는 이 세계의 출발점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하나의 시대적 주제에 대해서 동중서董仲舒와 회남자淮南子, 금문今文 학파와 고문古文 학파, 관념론적 천인감응天人感應 계열과 유물론적 자연주의 계열 등이 각기 다른 이론 체계를 제시하면서 대립과 균형을 유지하였던 시대가 한나라 시기였다. 하상공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두 계열의 대립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한나라 시대는 막을 내리고 위진 시대가 도래했지만, 두 계열 사이의 모순은 여전히 존재했다. 이 모순적인 두 계열 간의 조화가 시대적 소명이 되었던 위진 시대는 현실의 제도와 도덕체계 및 현상계의 복잡다단한 존재들의 합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현상계의 다양한 것들에게 그 존재성과 합리성을 부여하는 실체 또는 본체에 대한 탐구가 위진 시대의 철학적 주제였던 것이다. 왕필은 이러한 주제의식 속에 서 있었다.

 

노자가 살았던 춘추전국 시대는 중국 역사 상 가장 큰 변화가 사회전반에 나타났던 시기로서 사회는 혼란하고, 지배층의 착취가 극심하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상황의 배경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천자天子의 절대적 권력 아래 제후국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유지되어 왔던 기존의 지배체계가 무너졌고, 둘째 인간사회를 절대적으로 지배해 왔던 기존의 하늘天의 권위와 보편성이 의심 받게 되었으며, 셋째 피지배 계층이 부와 권력을 형성할 수 있게 되면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던 기존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에 동요가 일어났다.

 

공자는 당시 상황의 원인을 도덕성의 상실에서 찾았고, 노자는 만물 또는 세계의 관계성과 변화성, 그리고 자기 원인성 내지 자기 충족성을 부정하는 문화질서나 사회체계에서 찾았다. 따라서 공자의 철학은 도덕성을 회복하는 데 집중되었고, 노자의 철학은 그러한 질서나 체계를 약화시키는 데 집중되었다. 각자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공자가 어짊仁을 강조했다면, 노자는 분별하거나 일부러 일삼지 않는 무위無爲를 강조했다. 공자가 어짊의 내용이나 형식이 전통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하는 새로운 문명을 구축하고자 했다면, 노자는 무위의 내용이나 형식이 만물 또는 세계의 관계적·변화적 존재양태와 자기 원인적 내지 자기 충족적 존재양식自然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하는 새로운 문명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 글은 앞에서 서술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작업은 노자의 원래 뜻을 추적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노자의 원래 뜻으로 판단되는 여러 조각들을 찾아내고 마치 퍼즐을 맞추어 내듯이 맞추어 낸 결과가 이것이다. 그러한 퍼즐 맞추기 과정에서 위진 시대의 왕필본王弼本도 참고하였지만, 노자가 살았던 시대와 가까운 판본들, 1993년에 발굴된 대나무 조각에 쓰여진 전국 시대 초기의 죽간본竹簡本이나 1973년에 발굴된 비단에 쓰여진 한나라 시대 초기의 백서본帛書本 등도 검토하였는데, 죽간본이나 백서본 등을 검토하는데 있어서 문성재의『처음부터 새로 읽는 노자 도덕경』과 최진석의『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글에 들어있는 경문經文은 어떤 특정한 판본에서 채택된 것이 아니다. 노자가 살았던 시대와 가까울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만큼의 분량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는 백서본을 노자의 원래 뜻에 가까운 판본으로 인정했지만, 그 곳의 경문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도덕경』의 전승체계가 단선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필사筆寫 당시의 조건이나 상황이 모두 달랐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시점에서 어떤 특정한 판본을 노자의 원래 뜻으로 확신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왕필본을 기본적으로 사용하면서 노자의 원래 뜻에 가까울 것으로 판단되는 내용이 죽간본이나 백서본 등에 있는 경우 그것을 선택해서 사용했다. 의미상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그대로 두었으며,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경우에는 적절한 판본의 것을 채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노자의 원래 뜻을 찾아가는 일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 노자의 원래 뜻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노자의 원래 뜻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때때로 고전古典에 가해지는 자의적恣意的 해석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은 그 보편적 성격 때문에 자의적 해석 앞에서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야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겠지만, 그것을 다시 현실의 삶에 적용하려고 하는 경우,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노자이지만, 노자에게는 우리가 놓쳐버린 미래가 있다. 우리의 미래가 절대성보다는 상대성을 중시하는 세상으로, 동일성의 통일보다는 차이성의 공존을 중시하는 세상으로, 추상적 이념보다는 구체적 삶을 중시하는 세상으로, 단절과 대립보다는 소통과 협력을 중시하는 세상으로, 갈등과 투쟁보다는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는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노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주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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