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잡초는 정말 잡초일까...? 본문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밭에서 풀매기를 한다고 상상해 보라. 밭을 만들자마자 농부들이 비닐을 까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5월이 지난 밭에는 농작물 외에도 잡초들이 숨 가쁘게 올라온다. 농사를 지을 때 가장 고역스러운 일이 잡초관리다. 하지만 잡초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어 잡초를 친근하게 대하며 잡초의 생리를 알고 관리한다면 농작물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잡초의 약성을 알게 되면 잡초를 밥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잡초를 일상생활에 이용하는 것. 잡초가 천대 받으면 받을수록 농사는 더욱 힘든 일이 되고, 인간 중심의 우리 삶은 피폐해진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각기 어떤 사명을 띠고 태어난다. 흔한 것을 귀히 여기는 순간, 잡초는 우리의 삶을 흥미롭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불필요한 식물들.' 잡초의 사전적 정의다. '잡초'라는 말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인간이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잡초라는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농사란 인간이 필요한 식물을 선택하여 재배하는 일이다. 식물은 자신이 자라고 싶은 곳에서 자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경작지를 정하여, 인간의 경작 목적에 맞게 식물을 재배하고 변형시킨다. 그래서 인간이 재배하는 식물을 작물이라고 하고, 인간이 경작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자라 인간에게 불필요한 식물이 된 것을 잡초라고 한다.
인디언 사회에는 잡초라는 말이 없다. 인디언들은 작물과 잡초를 구별하지 않았다. 모든 식물과 동물은 자신의 영혼을 가지고 있고 각기 존재의 이유가 있는 생명이며, 자신들의 친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잡초는 식용이자 약용이 되어주는 고마운 식물이었다. 반면에 우리의 사회적 가치 기준으로 보면 잡초는 쓸데없는 풀, 즉 돈이 되지 않는 풀이다.
경작지가 아닌 산야에 풀들이 있다고 치자. 이것을 찹초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인간이 표적을 두고 있지 않기에 통칭하여 산야초 혹은 들풀이라고 한다. 산야초 중에서 약재로 사용되는 것이 약초이다. 약초는 야생일 수도 있고, 경작될 수도 있다. 야생 약초의 경우엔 잡초라는 게 없지만, 약초를 경작하는 밭에는 잡초가 경작자의 주의를 끈다. 왜냐하면 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재배하고 있는 약초이지 그 밭에서 마음대로 자라는 잡초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잡초는 농부의 가치에 의해 판단된다. 잡초는 밭에도 있고 논에서도 자란다. 쇠무릎이라는 잡초가 배추밭에서 자란다고 가정해 보자. 쇠무릎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했고, 쇠무릎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알지 못했던 농부가 쇠무릎이 귀한 약재로 쓰이는 잡초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농부는 쇠무릎이 배추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쇠무릎 밭을 조성한다. 이렇게 되면 쇠무릎은 더 이상 잡초가 아니다. 적어도 농부에게는. 그러다가 쇠무릎을 재배하는 농가들이 많아졌다. 쇠무릎은 다른 곳에서도 더 이상 잡초가 아니고 작물이 된다. 하지만 야생으로 자라는 쇠무릎은 '자연산 쇠무릎'이 되든가 쓸모없는 '개쇠무릎'이 될 것이다.
작물은 사람 손으로 재배되고 잡초는 야생으로 자란다. 작물은 사람 손에 의해 종자를 받거나 종자를 개량해서 심게 되지만, 잡초 씨앗은 자신의 방식대로 종자번식을 한다. 연약한 농작물 입장에서는 자기 밭에 있는 물, 햇빛, 영양분을 잡초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농부는 자신이 재배하는 농작물의 영역을 침범하는 잡초를 적대시한다. 내가 목적하는 것은 오직 경작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부에게 잡초는 하잘 것 없는 것, 쓸모없는 것, 없어져야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잡초냐 아니냐는 농부의 경제적 가치에 의해 선택된다.
잡초가 살아남게 되는 방식은 잡초가 경작물이 되고, 다른 것이 잡초가 된다는 선택적 가치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선택적 방식이 아니라, 잡초라는 말 그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잡초가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잡초는 없다'라는 인디언 사회의 가치가 적용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려면 무엇보다 '이익'이라는 것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인지, 궁극적인 삶의 이익인지, 이익을 방생시키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보는 것만을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자기 기준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모든 생명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할 이유를 가지고 태어났음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변현단 글 / 안경자 그림, "약이되는 잡초음식,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풀꽃세상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시족에서 '아가씨 농부'로... 주희씨가 참기름을 짠다! (0) | 2016.09.10 |
---|---|
농어업을 미래 산업으로 보고, 직접 농사를 짓거나, 관련 창업을 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0) | 2016.09.09 |
약초텃밭, 채소재배의 기원이다! (0) | 2016.08.19 |
잡초는 작물과 공생이 가능하다! (0) | 2016.08.19 |
잡초를 활용해서 잡초를 억제한다! (0) | 2016.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