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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이야기

입고 먹고 사는 일 모두를 "다시" 디자인하기!

독립출판 무간 2016. 8. 12. 08:39

<주거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 속에서, 이반 일리히는 주거하는 것은 인간뿐이라고 말한다. 곤충이나 새, 짐승이 집을 갖는 행위와는 달리, 인간은 문화라는 직물 안에서 직조된 '주거하는 기술art'을 대대로 계승하고 학습하면서 스스로를 점차 디자이너이자 기술자, 생활자로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볼 때, 각자의 '생명 지역' 안에, 그리고 각자의 공동체 안에 '주거하는 기술'이 존재해 왔다. 그것은 먹는 기술, 사랑하는 기술, 꿈꾸는 기술, 괴로워하는 기술, 죽어가는 기술 등과 하나가 되어, 각각의 지역에 특유의 생활양식을 만들어 나갔다.

 

과거의 집이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나갔던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날 주거 문제에서 전문가 집단의 독점 지식이나 기술, 기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은 그 문제에 대해 완전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전선, 전화선, 가스관, 수도관, 하수도 등 우리는 수많은 관을 통한 생명 유지 장치와 연결되어 살아가는 '식물인간'인 셈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다와 습지를 메우고 숲을 베고 산을 깎아서 만든 땅을 조금씩 잘라내서 값비싸고, 흉하고, 환경파괴적이며, 건강에도 해로운 주택을 급조해 왔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지탱해 온 주거산업의 실상이다. 건축재는 업자의 의향에 따라서, 방의 배치는 일련의 하이테크 전자제품이나 가구를 비롯한 너무나도 많은 가재도구에 맞춰 결정된다. 집은 이미 하나의 '물건 저장고'가 되었다. 바로 주거의 '맥도널드화', 패스트푸드 아닌 '패스트 하우스'의 완성이다.

 

맥도널드화, 세계화, 패스트푸드화의 물결이 전 세계 음식 문화를 급격하게 침식하고 있다. 그러나 맥도널드화하고 있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이다. 패스트푸드에 대항하여 최근 일부 지역에서 '먹는 기술'의 복권을 요구하는 슬로 푸드 운동이  시작된 것처럼, 이제는 '주거하는 기술'의 재생을 향한 '슬로 디자인 운동'이 곳곳에서 태동하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음식과 주택 모두 우리 문화의 근간이다. 슬로 푸드가 먹는 행위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람과 자연 관계를 다시 보고, 먹는 행위의 의미를 재정립하려 애쓰고 있듯이, 슬로 디자인 또한 주거의 문제를 인간적인 관점에서 재정립하여 제대로 된 공정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으로 '제대로 살기' 위한 하나의 시도인 셈이다.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건축과 도시 계획을 제창하고 나선 건축가 윌리엄 맥도너에 따르면 환경위기란 '나쁜 디자인'을 뜻한다. 이제까지 디자인이라는 말과 환경문제 사이에 일련의 관계가 있음을 알아차린 디자이너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디자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슬로 디자인이란 주거에 한정되지 않고 더 나아가 입고 먹는 문제까지를 포함하는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다시 디자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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