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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합당한 음식문화양식을 '미래식'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잡곡이다. 본문

먹는 이야기

미래에 합당한 음식문화양식을 '미래식'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잡곡이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9. 07:25

'잡'이야말로 21세기의 중요한 키워드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잡초, 잡목림, 잡곡, 잡종...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의 1차 산업에서 재인식되어야할 말들이다. 특히 미래의 음식 문화에서는 잡곡을 빼 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잡곡이 바로 일본 슬로푸드의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될테니까 말이다.

 

'잡곡 복권' 운동의 선두에 서 있는 오타니 유미코는 미래에 합당한 음식문화양식을 '미래식'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잡곡이다.

 

그다지 오래지 않은 과거에만 해도 전 세계에서 지역 식생활의 가장 중요한 먹거리였던 곡물들은 어느 사이엔가 한구석으로 물러나 이제는 잡곡이라는 총칭 속에 한데 넣어져 버렸다. 일본에서도 전후 백미주의 풍조 속에서 메밀을 예외로 피, 조, 수수와 같은 잡곡은 결핍의 대명사가 되어 경시되고 기피되다가 마침내 많은 사람들의 의식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오타니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조몬시대(새끼 자체를 돌려 감아서 만드는 일본의 조몬식 토기를 표식으로 하는 일본의 신석기 시대)부터 다양한 잡곡이 재배되었으며, 불과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지역에서 주식 작물로 이용돼 왔다. 잡곡은 수전, 수답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한랭지나 산간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보존성도 좋아 생태계에 대단히 포용적인 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양 균형 면에서도 쌀을 능가해 인간 생명 활동에 필요한 대부분의 성분을 지녔고, 면역력을 높이는 미네랄, 섬유질도 풍부하다. 잡곡은 쌀밥을 먹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먹는 거친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오타니는 이러한 생각들이 전혀 근거 없는 신화라며, 실은 매우 맞있고 다양한 요리에 사용할 수 있는 뛰어난 먹거리라고 한다. 그녀가 '울퉁불퉁 요리'라 부르는, 잡곡을 응용한 다양한 창작 요리들은 그녀의 주장을 훌륭하게 증명해 보인다.

 

잡곡이 폄훼된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각 나라와 지방이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리고 지금과 같은 세계화로 인해 한층 더 균질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세계는 쌀과 밀, 옥수수라는 세 가지 곡물로 온통 뒤덮이려 하고 있다. 게다가 농업은 점점 더 공업화되고, 생산자는 종자를 공급하는 다국적기업에 더욱 의존하게 되면서 농산물은 국제 시장에 지배당하게 되었다. 각 지역 생태계  속에서 전통 농업으로 유지되고 길러진 종자의 다양성은 급속히 사라져 가고, 식생활은 날로 비슷해져 간다.

 

이탈리아의 슬로푸드운동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먹거리를 구해 내자고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를 제창한 것처럼, 오타니는 지역의 전통적 식생활의 중심이었던 잡곡을 다시 한번 일상의 식탁으로 돌려 보내자는 '국제잡곡식포럼'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전통적인 잡곡식의 부활은 세계 각지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특히 육식을 줄이고 잡곡식이 늘어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할 수 있고, 기아나 남북 격차, 물 부족 해소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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