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왕필산책 : 도덕경 제62장 왕필주 "도는 만물의 근원이다" 본문
제 62 장
도자道者, 만물지오萬物之奧.
선인지보善人之寶.
불선인지소보不善人之所保.
미언가이시美言可以市, 존행가이가인尊行可以加人.
인지불선人之不善, 하기지유何棄之有?
고립천자故立天子, 치삼공置三公.
수유공벽雖有拱璧, 이선사마以先駟馬, 불여좌진차도不如坐進此道.
고지소이귀차도자하古之所以貴此道者何? 불왈이구득不曰以求得, 유죄이면사有罪以免邪? 고위천하귀故爲天下貴.
도道는 만물의 근원奧이다.
(그것을) 잘 실천하는 사람이 보배로 삼는 바이다.
잘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보존되어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도道에 대한) 아름다운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배우게市 할 수 있고, 받들어 실천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삼게加 할 수 있다.
잘 실천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찌 버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천자天子를 세우고, 삼공三公을 두는 것이다.
비록 둥근 옥구슬로 감싸놓은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서 나아간다 할지라도 (고요히) 앉아서 이 도道에 나아가는 것만 같지 못하다. 옛날에 이 도道를 귀하게 여긴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구하면 얻을 수 있고, (얻으면) 죄가 있더라도 면할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천하가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道者, 萬物之奧.
“奧”는 ‘가려준다曖’는 말과 같다. 덮어주고, 감싸준다는 뜻이다(奧, 猶曖也. 可得庇蔭之辭也).
【해 설】
왕필이 말한 “曖”, “庇”, “蔭” 등은 “자라게 하고, 살찌게 하며, 곧게 하고, 시들게 하며, 거둬들이고, 뒤집는다(長之, 育之, 亭之, 毒之, 養之, 覆之 : 제51장)”는 뜻으로서, “기른다(축지 : 제51장)는 의미이다.
善人之寶.
(“寶”는 감각·지각·의지·행위, 생김·자람·시듦, 운동·작용·활동과 같은) 일삼음用에 있어서 보배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寶以爲用也).
不善人之所保.
(“不善人”이) 온전한 것은 (그것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保以全也).
美言可以市, 尊行可以加人.
말하자면, 도道는 앞서지 않는 바가 없다. 만물 중에 이것보다 귀한 것이 없다. (따라서) 모름지기, 진귀한 보배로 장식한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가 있을지라도 그것에 비교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에 대한 “아름다운 말”은 모든衆 재화의 값어치를 빼앗는다. 따라서 도道에 대한 “아름다운 말은 (사람들에게) 배우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것에 대한 “받들어 실천함”은 천리 밖에서도 그것에 호응하게 만든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일삼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言, 道, 無所不先. 物, 無有貴於此也. 雖有珍寶駟馬, 無以匹之. 美言之, 則奪衆貨之賈. 故曰美言可以市也. 尊行之, 則千里之外應之. 故曰可以加於人也).
【해 설】
“尊行可以加人”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는데, 노자는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지 않는 “도道”를 “받들어서尊” “실천함行”을 전제로 “加”를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왕필은 제60장에서 “加”를 부정적으로 다루었다. 왕필은 “加”를 통치자가 정서적 또는 육체적 편리함 내지 정신적 혹은 물질적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만들어 내거나, 벌이거나, 일으키는(造, 事, 端 : 제56장 왕필주)”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왕필주 “道, 無所不先”은 도道가 ‘가장’ 앞선다는 의미이다.
왕필주 “無有貴於此”에서 此, “無以匹之”에서 之, “美言之”에서 之, “尊行之”에서 之는 도道를 지시하며, “千里之外應之”에서 之는 “尊行”을 지시한다.
왕필주 “奪衆貨之賈”는 ‘가장’ 값어치가 있다는 의미이다.
왕필주 “千里之外應之”에서 應은 “따른다(從 : 제57장 왕필주)”는 의미이다.
人之不善, 何棄之有?
(도道를) 잘 실천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도道를 보존하고 있음으로써 마땅히 내쳐짐放을 면하게 된다(不善, 當保道以免放).
【해 설】
다음을 참조해 볼만하다. “그러므로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구제하는데, 사람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언제나 만물을 잘 구제하는데, 만물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是以聖人常善救人, 故無棄人…常善救物, 故無棄物 : 제27장).”
故立天子, 置三公.
말하자면, (“天子”를 세우고, “三公”을 두어서, 도道를 잘 실천하지 않는 사람 또한) 도道를 받들어서 실천하게 한다는 것이다(言, 尊行道也).
【해 설】
노자와 왕필이 말한 “尊行”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지 않는 “도道”를 전제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하면, 노자와 왕필이 말한 “尊行”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는 제27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잘 하는 사람은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잘 하는 사람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故善人者, 不善人之師…不善人者, 善人之資 : 제27장).”
雖有拱璧, 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此道”는 앞에서 말한 바이다. (“坐進”은) 말하자면, “天子”를 세우고, “三公”을 두는 이유는 그 ‘자리位’를 받들게 하고, 그 ‘사람人’을 중시하게 함으로써, (도道를 잘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도道를 일삼는 근거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不如”는) 그것보다 값진貴 일物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비록 보배로운 둥근 옥구슬로 휘감아 놓은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서 나아간다 할지라도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이 고요히) 앉아서 “此道”에 나아가는 것만 같지 못한 것이다(此道, 上之所云也. 言, 故立天子, 置三公, 尊其位, 重其人, 所以爲道也. 無物有貴, 於此者. 故雖有拱抱寶璧, 以先駟馬, 而進之, 不如坐, 而進此道也).
【해 설】
왕필주 “尊其位, 重其人”에서 其位는 “天子” 또는 “三公”으로서의 ‘위상位相’을 의미하며, 其人은 “天子” 또는 “三公”으로서의 “역할能”을 의미하는데, “天子” 또는 “三公”으로서의 위상位相’ 혹은 ‘역할’은 “天子” 또는 “三公”이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감각하거나 지각하거나 의지하거나 행위한 결과로서 규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天子” 또는 “三公”이 자신에게 내포되어 있는 도道 혹은 덕스러움德인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 따라서 감각하거나 지각하거나 의지하거나 행위한 결과로서 규정되어진다(夫, 天地設位, 聖人成能 : 제49장 왕필주).
왕필주 “所以爲道”는 다음과 의미가 통한다. “보통사람은 (성인처럼 그것에 능함을 이루기 위해서) 애쓰며, 하늘과 땅의 정기는 (성인과 보통사람이 그것에 능함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백성은 (그것에) 능한 사람과 더불어 한다. (그것에) 능한 사람은 그것을 (백성에게) 가르치며, (그것에 능함을 배우는 데) 자질 있는 사람은 (그것에 능한 사람이 가르치는) 그것을 취한다. (배우는) 능함이 크면 (그 취하는 ‘자리’가) 커지게 되며, (배우는) 자질이 뛰어나면 (그 취하는 ‘자리’가) 귀해지게 된다(人謀, 鬼謀. 百姓與能者. 能者與之, 資者取之. 能大則大, 資貴則貴 : 제49장 왕필주).”
이 때, 왕필이 말한 “鬼”는 하늘의 정기인 혼魂과 땅의 정기인 백魄을 의미하고, 그것에 “능한 사람과 더불어 한다”는 것은 그것에 능한 사람과 언제 어디서나 “어우러진다(和 : 제56장)”는 의미이며, “그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것을 직접 귀로 듣게 하거나 눈으로 보게 한다는 의미이고, “그것을 취한다”는 것은 그것을 직접 귀로 듣거나 눈으로 봄으로써 직접 배우고 익히게 한다는 의미이며, 그 “능함이 크다”거나 “자질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 “실천(善 : 제49장)”이나 “믿음(信 : 제49장)”의 상대적인 강도 또는 정도, 상태 혹은 모습이 그러하다는 의미이고, 그 취하는 “자리”가 “커지게 된다”거나 “귀해지게 된다”는 것은 그 “실천”이나 “믿음”에 따른 “잘 대함(善之 : 제49장)”이나 “믿음으로 대함(信之 : 제49장)”의 상대적인 강도 또는 정도, 상태 혹은 모습이 그러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曰以求得, 有罪以免邪? 故爲天下貴.
(도道는 만물에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얻어서 “罪”를) 면(하고자) 함으로써 면할 수 있다. (도道는) 있지 않은 곳이 없으며, 하지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爲天下貴”인 것이다(以求, 則得求. 以免, 則得免. 無所, 而不施. 故爲天下貴也).
【해 설】
왕필주 “得求”는 자신에게 내포되어 있는 도道를 “따른다(法 : 제25장)”는 의미이다.
왕필주 “無所, 而不施”에서 無所는 제4장의 “似惑存”이나 제6장의 “綿綿若存”과 의미가 통하며, 不施는 제25장의 “周行”이나 제37장의 “道常無爲, 而無不爲”와 의미가 통한다.
의미 상, “邪”를 耶로 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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