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분노를 삭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치료책은 천천히 시간을 갖는 일이다! 본문
저에게는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분노를 이겨낼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감정 중 분노의 감정을 가장 두렵게 여깁니다. 분노의 감정에 한번 휩싸이면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갈 정도로 힘들고 괴롭습니다. 분노는 분명 슬픔보다도 더 걷잡을 수 없는 고통의 도가니로 저를 끌고 갑니다.
제가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분노는 믿었던 사람한테서 배반당할 때의 분노입니다. 분노 중에서도 배반에서 오는 분노가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하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서로 모르는 관계에서 배반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가장 사랑했던 이들한테서 배반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랑했던 가족과 친구한테서 배반을 당하면 삶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립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물론 무조건적인 용서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용서를 잘할 수 있는 인간이 못 됩니다.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더욱 더 고통을 느끼는 인간일 뿐입니다.
우리가 분노를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우리의 삶의 반은 많건 적건 분노의 밥을 먹어야 이루어집니다. 남한테 속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그리하여 재산권이라도 크게 침해당했을 때는 먹기 싫어도 꾸역꾸역 분노의 찬밥을 먹어야 합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이들한테 인격적인 무시를 당하거나 모욕을 당할 때는 분화구처럼 끓어오르는 분노의 뜨거운 밥을 먹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다고 나를 이렇게 만드느냐'고 절대자에게 대드는 심정으로 한 때를 살았습니다.
인생이 괴로운 것은 크고 작은 분노를 비켜갈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분노의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한평생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살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기만입니다. 한평생 분노하지 않고 살게 되기를 바라는 것 또한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미움과 분노를 어떻게 삭이고 다스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화가 났을 때 담배를 찾고 술을 찾습니다. 저는 화가 났을 때 무작정 길을 걷습니다. 걷기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면 처음 지녔던 분노의 감정은 조금 누그러집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여유도 조금 찾을 수 있고, 당장 그 어떤 보복적 행동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감정도 다소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가 나면 하염없이 길을 걷습니다.
'화가 나면 열까지 세세오. 그래도 화가 나면 백까지 세세요.'
이 말을 떠올리면서 걸어가다가 숫자를 세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분노는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방책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듯 분노를 치료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보통 말이 아닙니다. 분노를 삭일 수 있는 치유책을 가르쳐줄 수 있는 스승은 오직 세월이라는 스승뿐입니다.
저는 그동안 분노의 감정이 저의 강인함의 표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 나약함의 또다른 표현이었을 뿐입니다. 미움과 분노를 통해서 그래도 많은 것을 얻은 줄 알았으나, 얻은 것은 또다른 상처만 얻었을 뿐입니다. '복수심을 마음에 품고 있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을 믿지 않았으나, 그동안 지닌 복수심으로 제 가슴만 더욱 파괴되었을 뿐입니다.
미움을 통해서 얻어진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분노를 통해서는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오직 용서만이 분노를 삭일 수 있으나, 용서가 그리 쉽지 않은 우리에게는 세월이라는 시간이 우리를 도와줍니다.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려고 하지 말라! (0) | 2016.09.19 |
---|---|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아라! (0) | 2016.09.19 |
"너무 그렇게 미워하지 마라. 내 원수는 남이 갚아주는 법이다!" (0) | 2016.09.19 |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은 질줄 아는 사람입니다! (0) | 2016.09.19 |
용서하는 일보다 용서를 청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0) | 2016.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