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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은 질줄 아는 사람입니다!

독립출판 무간 2016. 9. 19. 08:37

어릴 때 형하고 같이 밥을 먹다가 형의 얼굴을 주먹으로 힘껏 갈겨버린 일이 있습니다. 형이 제 얼굴 중에서 코가 못행겼다고 장난삼아 놀렸는데, 저는 그만 그것 참지 못하고 형의 얼굴을 주먹질해버린 것입니다. 저는 덜컷 겁이 났습니다. 겸상해서 밥을 먹다가 형의 턱을 주먹으로 갈겨버렸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형한테 죽도록 얻어맞든지 밥상이 엎어지든지 무슨 수가 나도 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형이 허허 웃고 말더군요.

"야, 그만 밥 먹자, 미안하다."

형은 화를 내기보다 주먹질을 해 놓고 제바람에 놀라 씩씩대는 저를 오히려 달래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이고, 살았다!' 싶었습니다.

"얘가 미쳤나? 형한테 이게 무슨 짓이고?"

오히려 엄마가 화가 나서 야단을 쳤습니다.

저는 그 때 중학생이었고, 형은 의과대학생이었습니다. 중학생인 동생이 대학생인 형을 주먹으로 친다는 것은, 그것도 같이 밥을 먹다가 그런 짓을 저지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형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제가 동생한테 그렇게 맞았다면 아마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후부터 형의 말이라면 더 잘 듣고, 형을 따르고 존경하는 동생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형을 만나면 그 때 형이 보여준 너그러운 마음이 고맙게 생각됩니다.

남한테 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도 어쩌면 남한테 이기기 위해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도 바로 가까운 이들한테 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와 친한 사람이 잘되는 것울 보면 공연히 열패감이 느껴지고, 지고 만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이기고 싶기 때문에 사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지도 모릅니다.

예전에는 내가 형의 뺨을 때렸지만 이제는 다른 이들이 나의 뺨을 때립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형의 그 너그러운 미소를 떠올려봅니다. 자비무적. 이 한마디도 떠올려봅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적이 없습니다. 남에게 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비로운 마음을 늘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자비로운 마음만 있다면 남이 나에게 잘못해도 멀마든지 질 수 있습니다.

꼭 이겨야만 이기는 게 아닙니다. 세상은 꼭 이겨야 행복한 줄 알지만, 남을 누르고 남보다 앞장서야 행복한 줄 알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지는 이에게도 이기는 이에게 이김의 기쁨과 안식을 주는 행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짐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좌절의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했다는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이기기만을 원한다면, 누구나 다 앞장서기만을 원한다면, 아무도 앞장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비록 나를 이기기 위해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친다 할지라도, 나를 앞장서기 위해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 할지라도 지거나 뒤처진 자에게도 나름대로 기쁨은 있습니다.

부처님은 "나를 해치는 자를 가장 높이 받들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성철스님이 "천하에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은 질 줄 아는 사람이다. 무슨 일에든지 남에게 지고 밟히고 하는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가장 큰 승리는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 승리는 한 도시를 점령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남에게 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게 이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남에게 지는 사람이 가장 용맹스럽다고 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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