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너무 그렇게 미워하지 마라. 내 원수는 남이 갚아주는 법이다!" 본문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한테 미움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누구도 내가 원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누구도 나를 원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원수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바람일 뿐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현실 속에서는 사랑이 있는 만큼 증오가 있고, 은혜가 있는 만큼 원수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남을 미워하지 않더라도, 내가 아무리 남을 원수 삼지 않더라도, 남이 나를 미워하고 남이 나를 원수 삼는 게 현실입니다. 내가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상대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원수지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상대가 나와 원수졌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미움이 있는 관계, 원수진 관계나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도 한번 만나본 적도 없는, 차 한잔 같이 마셔본 적도 없는 사람이 공연히 저를 욕하는 경우도 있고, 제 청춘의 한복판에 심각하게 뛰어들어 제 삶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가능한 한 남을 미워하지 않고 남과 원수지지 않고 살아가야 되겠지만,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남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라지만, 저는 요즘 남을 미워하지 않고 살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교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남이 나를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미워하지는 말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어쩌면 오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움 또한 삶의 필수 요건이 아닐까요. 미워하게 될 때 미워하는 것도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일이 아닐까요. 미워하지 않고 어떻게 용서에 이를 수 있을까요.
"너무 그렇게 미워하지 마라. 내 원수는 남이 갚아주는 법이다."
어머니는 제가 누굴 미워하거나 그 미움 때문에 분노에 떨면 늘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 말씀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분노에 잠 못 이룰 때 어머니의 그 말씀이 왜 그렇게 위로가 되던지요. 저는 어머니의 그 말씀에 기대어 분노와 증오를 가라앉히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습니다.
글쎄요. 지금까지 '내 원수'를 남이 갚아주었는지 그 건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준 이들을 원수시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제는 시시비비조차 가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 어머니의 그 말씀에는 원수를 갚으려고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뜻이 숨어 있을 겁니다.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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