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지배와 피지배, 그 이분법적 논리의 극복 (1) : 완전한 해방은 지배와 피지배라는 논리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 본문
불교는 많이 일하고 적게 가지라고 가르친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많이 일하고 적게 가진다면 그것은 착취를 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해서 많이 일하고 적게 받는다면 그것은 착취가 아니라 베품이다. 많이 갖고 살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조금밖에 못 갖고 살면 비참한 가난이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가난하게 살면 빈곤이 되지만 스스로 가난하게 살면 자랑스러운 청빈이 된다. 그러므로 사실 재물이 있다 없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상태가 중요하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껴안았을 때 여자가 싫다고 하면 성추행이 되지만, 여자가 좋아하면 사랑을 나눈 것이 된다. 껴안았다는 것 자체에는 별 의미가 없다.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성추행이 되기도 하고 사랑의 행위가 되기도 한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주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보살행이 되기도 하고 노예생활이 되기도 한다. 성인이 되기도 하고 바보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행위든 내가 주체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욕구를 따라 가는 것은 주체가 아니고 욕구에 종속된 객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욕구를 놓으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돈에서 해방되려면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어서 해방되는 게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돈에, 자기 욕망에, 상황에 끌려 다니기만 한다. 그래서 인생이 괴롭다.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마음, 남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끌려 다니는 마음이다.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은 상대가 어른이고 나는 아이라는 얘기다. 도움을 원한다는 것은 상대가 주인이고 내가 종이라는 얘기다. 보살핌과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은 오래 된 노예근성이다. 여성해방을 주장할 정도로 똑똑한 여자일수록 좋아하는 남자는 자기보다 똑똑한 남자이다. 남자라면 어쨌든 믿고 의지할 만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보살피려고 하지 여자에게 믿고 의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기쳐서 여자 돈을 빼앗는 남자도 자기 여자는 보살피려고 한다. 그런데 여자는 아무리 똑똑해도 남자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여자가 부처가 못 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여성의 육체가 부처가 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 의지심을 갖고 있으면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남자는 자기보다 경제가 어렵거나 신분이 낮은 여자와 살 수 있지만, 여자는 절대 자기보다 못한 남자와 못 산다. 돈도 자기보다 못 벌고, 키도 자기보다 작고, 능력도 자기보다 못한 데다 마음까지 약해서 우유부단한 남자와 같이 살 여자가 과연 있겠는가?
몇전 년에 걸쳐 여자들이 남자를 의지처로 삼아 살아왔기 때문에 남자는 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도 스스로 의지처가 되면 놀라울 만큼 강해진다. 엄마로서의 여자가 바로 그 경우이다. 아이의 보호자로서 여자는 자기 몸을 희생해서라도 아이를 보호한다. 모성적인 여성은 주인으로서 여성이고, 우리가 보통 말하는 여성은 종으로서 여성이다. 남녀 관계에 있어서 여성은 노예로서의 여성에 속한다.
우리가 앞으로 여성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할 때 극복해야할 관점이 있다. '전에는 남자에게 여자가 억눌려서 살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 '남자가 담배를 피우니 여자도 피우자', '너 혼자만 바람 피우냐? 나도 피우자', '뼈빠지게 일했는데 너 혼자만 잘 먹냐? 나도 너처럼 잘 먹자. 월급 더 내놓아라.' 이런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의 관점을 갖고 있다면 극복해야 한다.
해방에는 피해의식이 전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해방의 논리를 철학적으로,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모두 지배자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그래서 여성이 해방되려면 과거의 지배자였던 남성을 피지배층으로 만들어 억압해야 한다든지, 노동자가 해방되려면 자본가계층을 억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어느 것도 해방되지 못한다. 완전한 해방은 지배와 피지배라는 논리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
(법륜스님 지음,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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