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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해방운동의 철학적 오류

독립출판 무간 2016. 9. 1. 17:18

놀이와 일이 분리된 이후 사람들은 '놀이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하던 것이었으므로 귀한 것이다. 또 노는 것은 육체적으로 편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노동은 천한 사람들이 하는 힘든 일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노동을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노동을 안 하게 되는 것이 목표이다. 즉, 어쩔 수 없어서 노동을 할 뿐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노동을 안 하고 놀며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 목표이다. 노동이 목표가 아니고 놀이가 인생의 목표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노동을 하는 동안 아무런 가치도, 보람도 못 느끼게 되기 때문에 삶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

 

노동은 하기 싫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 그래서 월급 밭으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그러니까 돈을 주고 논다. 똑같이 나이트클럽에서 흔드는데 무대 위에서 흔드는 사람들은 돈을 받고 흔들고, 무대 아래에서 흔드는 사람들은 돈 내고 흔든다. 돈 받고 흔드는 것이 노동이고, 돈 내고 흔드는 것은 놀이다. 노래를 부를 때도 돈 받고 부르면 노동이고, 돈 내고 부르면 놀이다. 이렇게 놀이와 노동이 분리되었다.

 

돈을 낸다는 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행위의 주체가 자기다. 거꾸로 돈을 받는다는 것은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행위의 객체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돈에 매여 있다. 주체가 되는 쪽도 돈에 의해 주체가 되기 때문에 마찬가지다. 이렇게 돈에 매인 삶을 살기 때문에 사람들은 노동의 해방을 '일은 적게 하고 돈은 많이 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을 안 하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착취계급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운동이 피착취계급의 해방운동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착취계급의 가치관에 철학적 바탕을 둔 운동이다. 우리가 '일은 하지 않고 앉아서 돈을 받으면 좋겠다', '일은 적게 하고 한 달에 몇백만 원씩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복권에 당첨되면 얼마나 좋을까?', '주식이 엄청나게 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모르던 친척에게서 갑자기 재산을 상속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양반이나 자본가로 살고 싶다는 말과 똑같다.

 

오늘날 여성운동이 빠져 있는 딜레마도 마찬가지다. 남성에게 빼앗긴 여성의 권리를 되찾자는 여성해방운동이 남성들처럼 사는 것이 여성해방이라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것은 입장만 바뀌었을 뿐 권위적, 가부장적 질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아니다. 노동운동가든 여성운동가든 상대를 비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도 상대가 누리고 있는 것을 똑같이 누리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일은 적게, 편하게 하고, 돈은 많이 벌고 싶어한다. 그것이 오늘날 모든 운동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면 안된다. 누군가 적게 일하고 돈을 많이 받으면 반드시 일은 많이 하고 돈은 적게 받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억압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억압의 이동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경제질서가 가진 한계이다.

 

(법륜스님 지음,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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