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기업에 생명을 맡기다 : 기업이 종속관계를 선도하고, 시장을 점유했기 때문이다! 본문

먹는 이야기

기업에 생명을 맡기다 : 기업이 종속관계를 선도하고, 시장을 점유했기 때문이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20. 00:08

 

주부에게 가장 중요한 가사노동은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다. 하루 세 끼 메뉴를 정하고 동시에 가족구성원의 건강상태를 고려한 식단을 준비해야 한다.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제대로 먹는 일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하루 세끼를 집에서 먹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남편은 회사에서 한 두 끼를 해결한다.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예전 여성들은 부엌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야만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남녀역할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여성들의 이같은 욕구를 채워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도시의 가난한 여성들은 가족을 위해 '한푼'이라도 벌어야 했다. 때마침 기업은 여성들을 시장으로 끌어내어 저임금 구조를 만들면서 여성들이 해왔던 가사노동을 기업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여성들은 집에서 인정 받지 못하던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공장에서 죽도록 일하며 돈을 벌었고 그 대가로 공장에 서 만든 식료품을 산다. '노동'을 팔아 그 대가로 '돈'을 받고, 그 '돈'으로 기업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사는 것이다. 결국 가족이라는 최소의 단위조차 기업에 종속되는 구조가 되었다.

 

조리기구들의 발달은 중산층 여성에게 음식을 준비하고 살림하는 시간을 단축시켜 줌으로써 여성들이 다른 사회적인 일들, 즉 자신을 위한 생활과 사회활동 그리고 소비생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하지만 가난한 여성들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죽도록 일한 뒤 녹초가 되어 돌아와서도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해야 했으므로 가사노동을 덜어줄 수 있는 전자제품을 하나 장만하는 것을 소망으로 삼았다.

 

우리의 집안을 한 번 살펴보자. 주방에는 냉장고, 전자레인지, 믹서, 커피포트, 전자밥솥 등 조리기구들이 즐비하다. 냉장고에는 싱싱한 식재료보다 가공품이 많다. 통조림, 빵, 잼, 소시지 등이 있고, 냉동고를 열면, 만두, 냉동찌개, 냉동피자 등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품들이 빼곡하게 차 있는 게 보인다. 식료품 창고를 열면 밀가루 대신 부침용 가루나 튀김가루가 있게 마련이다. 요즘엔 감자가루나 메밀가루 등 다양한 가루제품이 나온다. 그밖에 케첩과 마요네즈를 비롯한 각종 소스며 음식의 맛을 내는 혼합가공제품들도 많다. 파, 마늘, 생강 등 양념류조차 시장에서 손질되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포장된 것들이다. 양조간장, 된장, 초고추장 등의 장류와 다시다 같은 종합조미료도 있다.

 

이제 엄마는 마트에서 사온 가공품들을 내놓는다. 밀봉된 감장 포장을 뜯어서 슈퍼마켓에서 사온 양조간장으로 감자요리를 한다. 엄마의 요리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엄마는 세탁기로 빨래를 하고, 전자레인지에 냉동식품을 해동시키면서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가스레인지 위에서 이미 준비된 양념으로 찌개를 끓인다. 이처럼 전기제품은 주부의 멀티플레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두어 시간도 안 돼 '뚝딱' 일을 해치운다. 자신이 사온 식료품에 어떤 것이 들어 있는지, 그 재료를 무엇으로 세척했는지 따위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오로지 간편하게 조리하고, 시간을 줄이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입'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 구성원들이 시장으로 돈을 벌러 간 사이 엄청난 위협이 일어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모두들 공장에서 만들어진 식품을 사서 먹는 요즘, 만일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물류가 차단되면 어디서 식량을 구할 것인가? 공장이 문을 닫으면 어디서 식량을 만들 것인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소비자'로 전락한 이 시점에서는 돈이 있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기업이 종속관계를 선도하고 시장을 점유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에게 개개인의 생명을 '흔쾌히' 맡겨놓은 꼴이다.

 

(변현단 글 / 안경자 그림, 약이 되는 잡초음식,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