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질경이 : 생명을 잉태하는 방식, 밟혀야 살아남는다! 본문
(사진출처 : Daum 검색 자연박물관 포토)
8월 한여름, 사람이 다니는 길에 '질경이'가 땅에 붙어 씨앗을 맺고 있다. 질경이에 대한 나의 추억에는 항상 토끼가 있다. 우리 집에서는 하얀 토끼를 키웠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와 오빠의 손에는 항상 질경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신작로가 생기기 전,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좌우 차바퀴 중간은 바퀴에 밟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풀이 자란다. 대부분 벼와 잡초나 질경이다. 용케도 사람들도 역시 풀 난 곳이 아닌 차바퀴가 굴러다니는 양쪽으로 걷는다. 그러니 돌아오는 길에, 길 가운데에서 질경이를 캐어 올 수가 있었다.
토끼가 잘 먹는 것은 토끼풀보다 질경이다. 질경이를 어느 풀보다 잘 먹으니, 아이들은 질경이만을 뜯어다 주었다. 엄마가 가끔 다른 풀을 뜯어다 주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오빠와 나 그리고 여동생마저도 질경이만 뜯어다 주었다. 그래서 질경이를 보면 토끼가 생각나고 토끼를 보면 질경이가 생각나는 모양이다.
질경이는 아무리 밟혀도 죽지 않는다. 길바닥에서 소나 말, 사람에게 밟혀도 모습만 흐트러질 뿐 죽지 않는다. 질기고 질겨서 '질경이'라고 부른다. 질경이의 학명은 'planttao adiatica'로 '발바닥으로 옮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질경이 씨앗에는 종이 기저귀에 사용하는 것과 흡사한 화학구조를 가진 젤리 모양의 물질이 있어 물에 닿으면 부풀어 오르며 달라붙는다. 질경이는 이 성질을 이용하여 씨앗을 퍼뜨린다. 사람이나 동물의 발에 붙어 새로운 거처를 찾아가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길의 파수꾼'이라고 부르는데, 질경이가 등산로를 따라 산에 올라간다는 뜻이다. 번식의 한 방법이 이름으로 고착된 것이다. 길이 있는 한 질경이는 밟혀서 자라고, 밟혀서 자기 씨앗을 옮겨 번식한다. 그래서 질경이는 민초의 삶에 비유되기도 한다. 민초, 잡초, 징한 삶, 질기고 질긴 생명력, 이런 의미를 지녀서 그런지 질경이는 뿌리부터 씨앗에 이르기까지 먹지 않는 부분이 없다. 만병에 좋은 약으로, 음식 재료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질경이를 '차전초'라고도 부르며, 피를 멎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에 얽힌 중국의 일화를 소개한다.
한나라 마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군사를 이끌고 전쟁터로 갔다. 산 넘고 강 건너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을 지나게 되었다. 사람도 지쳤고 식량과 물이 부족하여 많은 병사들이 죽어갔다. "군사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회군하자." 병사들은 아랫배가 붓고 눈이 쑥 들어가고 피오줌을 누는 '습열병'으로 고생하고 힜었다. 말도 피오줌을 누면서 하나 둘 쓰러졌다. 그런데 말 한 마리가 생기를 되찾고 맑은 오줌을 누는 것이 아닌가. 말은 마차 앞에 있는 돼지귀처럼 생긴 풀을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맞아! 이 풀이 피오줌을 멎게 한 거야." 병사는 곧 그 풀을 뜯어서 국을 끓여 먹었다. 오줌이 맑아지고 퉁퉁 부었던 아랫배도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 풀을 수레바퀴 앞에서 처음 발견했다고 하니 이름을 '차전초'라고 부르면 어떻겠느냐?"
그 뒤로 사람들은 그 풀을 차전초라고 부르게 되었다.
5월 연두빛 순이 오를 때 질경이 잎을 뜯어서 씹어 먹어 보면 달짝지근하다. 하지만 6월이 지나면 생잎을 먹기엔 잎맥이 다소 질기다. 이 때는 질경이로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 좋다.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그러고 보면 잡초와 가장 잘 어울리는 양념은 역시 토종양념인 된장이다. 쌈으로 먹을 때는 된장을 찍어 먹으면 되고, 데쳐서 먹을 때는 된장에 무치고, 삶아서 먹게 되면 된장국을 끓여서 먹으면 되니, 된장보다 더 잘 어우러지는 양념이 어디 있을까? 된장은 잡초를 위해서 만들어진 양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나는 쌈을 제외하고 약간 질기게 된 모든 잡초는 된장으로 양념을 한다. 고추장은 본연의 식재 맛을 여리게 하는 반면, 된장 양념은 식재의 고유한 맛을 살려 풍미를 돋우니까.
이렇게 먹자!
일반적으로 잡초에는 무기질과 단백질, 비타민, 당분 등이 많이 들어 있다. 특히 이른 봄에 새순으로 먹는 나물들이 그렇다. 질경이를 비롯한 잡초들은 나물로 먹거나 녹즙으로 갈아먹으면 좋다. 좀 질겨지면 삶아서 말려 두었다가 나중에 먹을 때 물에 불려 조리한다.
삶은 것을 한 끼 분량씩 냉동고에 보관했다가 소금물에 살짝 데쳐 나물로 무치거나 기름에 볶아 먹기도 한다. 튀김으로도 먹을 수 있다. 질경이로 김치를 담그면 그 맛이 각별하다. 장아찌도 그렇다. 된장 장아찌도 좋고, 살짝 쪄서 깻잎 장아찌 담그듯이 해 먹어도 좋다. 그러면 오래 오래 먹을 수 있고, 숙성이 된 거라 혀에 닿는 감촉도 아주 부드럽다. 막걸리와 소주 안주로 제격이다.
씨앗으로 기름을 짜서 메밀국수를 반죽할 때 넣으면 국수가 잘 끊어지지 않는다. 8월에 한참 여물어 오르는 질경이 씨앗은 변비에 좋다. 비만 치료를 위한 건강보조식품의 성분에 종종 차전초 씨앗이라고 명기된 것을 볼 수 있다. 숙변을 빼기 위해 넣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씨앗들은 지방성분을 함유한다. 그런데도 이 씨앗을 먹는 경우는 변비 치료의 목적 때문이다. 몇 주 동안 꾸준히 먹으면 변비만이 아니라 숙변까지 제거된다. 그래서 '장수식물'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질경이잎과 줄기는 말려 두었다가 끓여서 음료수로 마시기도 한다. 또 질경이 효소를 담가서 먹기도 한다.
물론 질경이로 술을 담가도 좋다. 이처럼 질경이는 사용하지 않는 부위가 거의 없다. 이름처럼 약성까지 뛰어난 질경이를 일상의 음식으로 부지런히 섭취해 보자.
(변현단 글 / 안경자 그림, "약이 되는 잡초음식,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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