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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세상야

뱀딸기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독립출판 무간 2016. 8. 13. 22:00

(사진출처 : Daum 검색 자연박물관 포토)

 

들꽃학교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딸기는 언제 나오죠?"

아이들은 한참 생각하다가 "겨울이요"한다. 이쯤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럼 어디서 나오죠?"

"E 마트요"

E 마트가 슈퍼마켓이나 시장, 물건 사는 곳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을 알 수 있는 일화다. 마주앙이 와인의 또다른 이름이 되었듯이. 그나마 부모와 함께 텃밭을 가꾸러 다니는 아이들은 행운아다.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서 딸기 모종을 사다 심어 놓는다. 4월에 딸기 모종을 사다 심으면 6월경에 딸기가 열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태양빛 아래서 딸기가 언제 열리는지 알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는 밭 딸기가 사라지면 산에 가서 산딸기를 따 먹었다. 햐얀 찔레꽃이 지고 나면 줄기를 따 먹는 찔레순. 6월 상수리 칡넝쿨 사이로 하얀 꽃이 핀다. 7월에 산에 올라가면 하얀 꽃은 간데 없고, 빨간색이 잎 사이로 문득문득 보이기 시작한다. 딸기나무다. 한 손을 뻗어 딸기를 따서 먹다가 나중에는 두 손으로 따 먹는다. 그러다가 딸기 군락지 '딸기 전치'를 만나면 한 손으로 딴 걸 다른 한 손에 옮겨 놓으며 먹는다. 담을 손이 부족하면 주머니에 넣고, 주머니가 꽉 차면 고무신에도 가득 담았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에서 자란 산딸기는 몇 개씩밖에 못 먹지만 산에 가면 사방이 산딸기다.

6월 즈음, 산딸기가 일어설 때 아주 토실하고 예쁜 뱀딸기도 모습을 드러낸다. 뱀딸기는 산딸기와 달리 3~4월에 노란 꽃을 피운다. 도톰하고 둥글고 탐스럽다. 5~7월에는 붉게 성숙한다.

"저건 먹으면 안 돼, 먹으면 독이 있어서 죽어"

어른들은 뱀딸기를 먹으면 죽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나 역시 뱀딸기를 보면 지레 겁을 먹고 피해서 가곤 했다. 행여나 몸에 독이라도 묻을까봐. 뱀이 먹는다고 해서 뱀딸기일까? 아니면 뱀에게 유혹적인 성질이 있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일까? 아무튼 이런 학습 때문에 산딸기와 달리 뱀딸기는 아주 편하게 종족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적이 많은 도심의 길가에서도 뱀딸기를 볼 수 있는 게 아닐런지.

뱀딸기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뱀딸기를 하나 따서 아주 조금 떼어내 입에 넣는다. 딸기씨앗이 입에 씹힌다. 맛은 달지만 당도는 높지 않다. 차고 밋밋하다. 그렇지만 먹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다. 임상실험 중인 나는 '에이, 병원이 코앞인데'하면서 한 개를 더 따서 아예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뱀딸기를 먹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특별한 증세도 없다. 뱀딸기에는 사람을 죽일만한 독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먹어도 된다. 단, 산딸기나 딸기보다 맛은 떨어진다. 아마 사람들이 뱀딸기를 찾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 맛 때문이리라. 그것이 나중에 '독이 있다'로 확대되었던 것일 테지. 원래 소문이란 그런 거니까. 사람은 얄팍해서 혀끝으로 먹지만 뱀은 사람보다 영리하게도 천연약재를 찾아 먹은 셈이다.

뱀딸기는 '사매'라고 부른다. 약초명은 대부분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것을 번역한 것이 한국명이 되었다. 그러니까 뱀열매(딸기란 원래 열매라는 뜻이다)인 셈이다. 뱀처럼 유혹적인 열매이긴 하지만 실제로 맛은 없고 서늘하다. 사매는 그 서늘한 맛으로 인해 가슴과 배의 열이 계속되는 것을 다스리는 데 효용이 된다. 찬 기운이 뜨거운 열을 식히는 것이다.

뱀딸기는 이른바 '항암효과가 있다'는 학계의 보고가 나오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그 위상이 달라졌다. 복수암에 걸린 쥐를 실험한 결과였다. 하지만 복수암에 걸린 쥐는 쥐일 뿐이다. 암에 걸린 쥐를 실험한 것이지 사람을 실험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경우는 병이 비단 신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나 환경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더구나 마음은 질병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복수암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자. 뱀딸기를 많이 먹으면 나을 것이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을 수도 있지만 낫지 못할 확률도 있다. 환경과 마음가짐 그리고 관계의 역학 때문이다. 또 당사자의 체질도 문제다. 사람마다 기운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기운에 따른 몸과 마음이 다 제각각이니 어떤 것이 뭐에 좋더라는 말을 맹신할 게 아니라 약이 되는 음식으로 생각해서 먹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먹자!

뱀딸기는 주로 어린잎과 열매를 먹는다. 여름에서 초가을에 이르기까지 뱀딸기의 잎과 줄기 뿌리까지 전체를 채취하여 말린 뒤, 뭉근하게 달여서 음료수처럼 먹는다. 목이 아프고 열이 나는 후두염, 기관지염 등에 효과가 있다. 잎과 줄기에는 각종 항암작용 외에도 항균작용, 면역기능 증강작용이 있다고 한다. 곤충에 물린 상처, 종기, 습진에는 생잎을 짓찧어 붙이고, 안질에는 뱀딸기 즙을 짜 넣으면 효과가 좋고, 덩굴을 삶아 김이 날 때 좌욕을 하면 치질에 좋다.

가장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잼을 만들어서 먹는 것이다. 뱀딸기를 따다가 꿀이나 설탕을 넣고 뭉근한 불에 달여 잼을 만들어서 빵에 발라 먹거나 그냥 물에 타서 먹는다. 딸기요구르트나 딸기잼처럼 딸기를 먹는 요리법을 그대로 적용해도 된다. 상용하는 음식에는 뱀딸기를, 약으로는 잎과 줄기를 이용한다. 어쩌면 이제부터 뱀딸기를 재배한다는 농가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변현단 글 / 안경자 그림, "약이 되는 잡초음식,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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