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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세상야

개여뀌, 오염된 곳을 정화하라!

독립출판 무간 2016. 8. 12. 13:44

 

 

(사진출처 : Daum 검색 자연박물관 포토)

 

 

올해는 정왕동에도 밭이 생겼다. 이 밭은 동네 사람들이 텃밭으로 일구었던 곳이다. 자신의 밭과 다른 사람의 밭 사이에 돌과 온갖 잡스러운 쓰레기를 모아 경계를 두었다. 자기 밭에는 돌이나 쓰레기가 있어서는 안 되니까 옆에 놓게 되고, 그 옆에서 농사짓던 사람도 그렇게 한다. 결국 밭과 밭 사이에는 경계석과 쓰레기로 뭉쳐진 나지막한 담이 생겼다.

 

"나는 경작 본능이 다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경작 본능 뒤에 숨어 있는 욕심들이 장난 아냐."

 

경작 본능을 일깨우겠다며 텃밭을 분양하고 교육도 하면서 농사바람을 일으켜 보지만 자투리땅에는 이미 '훌륭한' 경작 본능이 자리 잡고 있다. 경작 본능을 맘껏 발휘하는 주인공은 대개 연세 드신 할머니들이다. 그들은 시골에서 자라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이다. 도시에서는 할 일이 없다. 자식이 부랴부랴 도시로 데리고 올라오니 할 일이 없고 그나마 자투리땅이라도 발견하면 본능처럼 땅을 일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 수건 매고 호미 들고 나가던 습관을 못 버리고 땅만 보면 경작 본능을 앞세우는 것이다.

 

경작 본능은 늘 '자기 밭'에서만 발휘된다. 자기 밭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온통 쓰레기더미로 가득하다. 검은 비닐봉지를 가지고 와서 쓰고는 다른 밭에 버린다. 그리 넓지 않은 텃밭에도 비닐을 씌운다.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그런 정왕밭에서 경우 내내 돌담을 부수고 돌을 골라내니 그 안에서 비닐, 헝겊, 노끈 등 수많은 쓰레기가 나왔다. 이 쓰레기들은 아마도 밭을 최초 경작할 때 썼던 자재들일 것이다. 다음 해에는 새것을 사용하느라 그것들을 땅에 묻었으리라. 정왕밭 주변에는 썩은 냄새, 쓰레기 냄새가 난다. 좋은 흙냄새가 아니다. 이런 땅에서 올해부터 제대로 정직한 농사를 지어보겠다며 겨울부터 내내 개간하고 있다. 감자도 심어보았지만 거의 수확하지 못했다.

 

땅이 모래땅이라고 생각했지만 골을 높게 타주지 않은 터라 비가 오면 쉽게 빠지지 않았다. 감자의 잎들이 말라버릴 즈음, 주변에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이게 뭐예요?"

"여뀌예요. 개여뀌"

 

논밭이나 냇가 습지는 여뀌들 세상이다. 연한 녹색 잎에 붉은색이 약간 감돈다. 붉은색의 꽃이 6~9월경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달리는 꽃차례에 무리지어 핀다. 개여뀌, 가시여뀌, 기생여뀌, 털여뀌, 버들여뀌, 이삭여뀌, 장대여뀌 등 종류도 많다. 농사꾼에게 여뀌는 귀찮은 잡초다. 제 아무리 뽑아도 또 나오니까. 꽃이 필 때는 밭두렁에 진한 분홍빛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분홍색 좁쌀처럼 매달린 여뀌꽃은 멀리서 보면 참 아름답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여뀌는 개여뀌다. 여뀌만 못한 것이 개여뀌다. 옛날엔 농사일을 하다 개울가에 가서 놀고 싶은 남자아이들은 여뀌 잎과 줄기를 짓이겨 물고기를 잡았다. 여뀌가 가진 매운맛이 물고기를 잡는 데 쓰인 것이다. 여뀌를 이용한 물고기 잡이는 굶주린 시절에는 하루 일과 중 꼭 해야하는 일이기도 했다.

개여뀌는 여뀌만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개여뀌는 신맛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천과 습지에 여뀌가 즐비한 것은 여뀌에 항균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지저분한 곳에서 자란다고 해서 식물마저 더러운 것은 아니다. 미나리는 습지에서 자라지만 미나리가 오염물질은 아니다. 오염물질을 자신이 흡수하여 오히려 정화시켜낸다. 사람이 정화제를 먹는 것과 같다. 여뀌도 그렇다. 여뀌는 습지나 오염된 곳에서 나쁜 균들이 번성하지 않도록 항균작용을 하며 자연을 지킨다. 여뀌는 자신의 사명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한방에서는 가을에 뿌리째 말려 해열제, 해독제, 지혈제, 이뇨제로 사용했다. 여뀌에 있는 매운 맛을 살려 향신료를 만드는데 쓰기도 했다. 여뀌의 휘발성 정유 성분은 혈관을 넓혀주고 혈압을 내리는역할을 한다.

 

 

(변현단 글 / 안경자 그림, "약이 되는 잡초음식,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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