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슬로푸드... 돌연변이 포도나무, 슈퍼 호모균 본문

먹는 이야기

슬로푸드... 돌연변이 포도나무, 슈퍼 호모균

독립출판 무간 2016. 8. 7. 11:36

독일의 유명한 미식가인 볼프람 지베크는 "세계에서 독일인처럼 겁많은 국민도 없다"고 불평했다. 유전공학을 놓고 논쟁하면서 음식 재료의 맛이나 다양서, 신뢰성은 제쳐두고 오로지 안전성에만 매달리는 태도가 그에겐 불만이었다. 지베크는 유전자조작으로 음식 맛이 평준화되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이렇게 비아냥거린다. "앞으로 음식은 세 가지 맛으로 요약될 것이다. 복숭아 맛, 딸기 맛, 바나나 맛이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한 음식 전문가는 유전자조작으로 만든 음식이 아닌 진정한 음식을 보호하고 권장하는 유전자조작 반대운동을 시작하려 한다. 그는 유기농 옹호자들이 벌이는 운동과 비슷한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려 한다. 물론 '대형 식품산업 집단에 집중된 막대한 권력 때문에' 유전공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제2의 혁명'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추악한 면이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 나타날 것은 틀림없다고 단정한다. 그는 "오늘날 판매되는 야채는 대부분 너무 크고 오래가서 다른 용도라면 모를까, 먹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품질이 향상된 와인은 예외에 속하는 경우다. 유전공학은 술의 신 바쿠스 앞에서도 거칠게 없다. 작년에 오스트레일리아 과학자 트리시아 프랭크스와 마크 토머스는 처음으로 유전자조작을 한 포도를 자신만만하게 내놓았다. 그러나 단지 실험 단계였다. 이들은 병원균 아그로박테리움 투메파시엔스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 병원균을 이용하면 외부 유전자를 어린 식물에 이전시키는데 사용한 기술을 포도나무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시도는 적중했다. 이제 성경에 나오는 식물 가운데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는 종류는 거의 없게 되었다.

 

이제 기술은 완성되었고, 원하기만 하면 외부 유전자 물질을 식물에 주입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랭크스와 토머스는 세 가지를 목표로 삼았다. 첫째, 품질이 좋은 열매가 열리는 포도나무. 둘째, 병충해에 견디는 포도나무. 셋째, 결국 썩어서 완전 분해되는 새로운 하이테크 포도나무.

 

프랑스에서도 포도나무에 유전공학을 도입하여 유전자가 조작된 포도나무를 심었다. 유명한 부르고뉴 샤르도네를 바이러스에 견디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특정 유전자의 투입으로 새롭게 복제된 샤르도네는 이렇게 얻은 항체 때문에 바이러스 공격에 잘 견디게 되었다.

 

이런한 실험에도 불구하고 '가이젠하임 와인 연구소'의 책임자인 에른스트 뤼일은 유전공학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다. 자연의 환경과 그 순수성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와인에서는 이런 실험이 쉽게 통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비자들은 다른 종류의 음식보다 와인을 고를 때 더 까다롭다. 에른스트 뤼일은 오히려 유전공학이 와인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맛이 아니라, 병에 담는 기술 정도에서나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유전자를 조작한 효모균이 이미 개발되어 실용화되기만 기다리고 있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이 나라의 유전공학자들은 설탕을 알코올로 만드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특별한 형태의 효모균을 만들었다. 발효 단계에서 유전자가 조작된 효모는 강력한 말산을 젖산으로 변형시켜 와인 산도를 억제하거나, 포도의 세포벽에서 펙틴을 더 많이 끌어내어 와인의 색깔을 강렬한 붉은색으로 만든다. 또한 맛에도 얼마간의 영향을 미친다. 실험실에서 개발된 새로운 종류의 효모균은 글리세린 형성을 도와 맛을 진하게 해 준다. 기업형으로 대량생산하는 와인에 효모균만 첨가해도 얼마든지 유전자를 조작하여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아직 실행단계는 아니지만, 포도나무가 유전공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무인도로 계속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바이러스에 견디고 따라서 살충제를 줄여도 되는 포도나무가 개발되면, 포도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두 손 들어 환영할 것이다. 하지마 이 문제는 유전자조작의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바이러스에 맞서는 포도나무의 면역 능력은 여러 유전자들이 함께 작용하는 복잡한 게임이다. 에른스트 뤼일은 "전통적인 방법대로 성장한 야생 종자에서 항체를 이식하는 편이 유전공학 방법보다 더 쉽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은 유전공학의 위험이 당장 몇 년 안에 현실로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다. 의학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현실은 전문가들의 기대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경우가 보통이다. 유전공학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두 군데 회사에서 연간 수천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가며 옥수수 유전자를 해독하려 하고 있지만, 완전히 해독하는 데는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식물의 성장이나 신진대사 과정이 한 가지 유전자에만 달려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 유전자 하나만 제거하거나 교체한다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성장이나 신진대사 과정은 여러 유전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다.

 

끝으로 시민들이 유전자조작식품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공개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조사 통계에선 열명의 소비자 중 여덟 명이 유전공학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두려움과 불신이 이 '제2의 혁명'의 시기를 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