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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가끔씩은 어둠을 아름답게 되찾아 보자!

독립출판 무간 2016. 7. 7. 07:27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나무늘보 친구들' 모임의 동지들과 6월 하지에 몇 시간 동안 자발적인 정전을 실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전기 켜는 일을 게을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 일의 계기는 북미의 한 단체가 미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반대하여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어둠의 물결'을 밝히고자 촉구한 데서 비롯됐다. 어둠의 물결이란 만일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전기를 끄면, 시차에 의해 흡사 파도 타기 응원처럼 어둠의 띠가 지구에 물결처럼 흐른다는 이미지에서 나온 말이다. 이처럼 처음에는 낭비형 에너지 정책에 반대하는 캠페인이었지만, 내가 직접 해 보고 난 뒤 나는 이 행동이 단순한 에너지 절약에 그치지 않는, 즐거운 문화 운동임을 알게 됐다.

 

전기를 끄는 일을 무엇보다 어둠을 되찾는 일을 의미한다. 일본인의 80퍼센트가 도회지에서 사는 지금, 우리들 주변으로부터 어둠이 떠나버린 지 오래다. 하짓날의 자발적인 정전은 지금 '100만 명 촛불 밝히기 프로젝트'로 그 지평을 더욱 넓혀 나가고 있다. '전기를 끄고 달을 보고 별을 보자, 반딧불을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어둠 속에서 말 없이 잠자코 있는 사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닥불을 피우기도 하고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도 있다. 촛불의 불꽃은 어둠을 부정하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일으켜 세워 준다.

 

세계 각지에 흩어진 유대인들 대다수는 지금도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촛불 아래 모여서 성스러운 안식일의 시작을 축복한다. 종교에 그다지 관심 없는 사람도 어릴 적의 안식일을, 촛불 아래 밝혀졌던 가족들의 얼굴을, 지금도 그리운 추억으로 떠올린다고 한다.

 

강의에 출석하는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저녁식사 때면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들에게 슬로 라이프의 시작으로 우선 텔레비전을 꺼보라고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어쩐지 어색한 침묵이..."라고 답한다. 텔레비전이 켜 있지 않으면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연인과는 헤어지는 편이 나으며, 가족이라면 따로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하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여하튼 나는 "일단 한번 전기를 끄고 촛불을 켜보라"고 말한다. 그러면 또 학생들은 쑥스럽다고 답한다. 하기야 이삼 일쯤은 쑥스러운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며칠 지나는 사이 거기에 익숙해지고 즐거워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너무 봐서 싫증난 얼굴도 촛불의 오렌지 불꽃 아래서 보면 꽤 신선하고 로맨틱해 보일지도 모른다. 서구에서는 많은 가정들이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의식을 지금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함께 식사를 하고 불빛에 둘러싸이는 것, 촛불을 밝히고 식사를 하는 행위에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실현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인간이 인간임을 보여주는 문화의 3대 요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시판되고 있는 양초의 대부분은 석유 원료인 파라핀으로 만들어진다. 모처럼 자발적 정전을 실천하고 있는데, 그 순간에도 석유를 태워야 하다니 얼마쯤은 분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친둑들과 함께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밀랍 등의 천연 재료를 이용한 양초나 등, 초롱 등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 회사 이름은 '천천히 당'이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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