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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필산책 : 도덕경 제38장 왕필주 "높은 수준의 덕스러움과 낮은 수준의 덕은 다르다" 본문

왕필산책

왕필산책 : 도덕경 제38장 왕필주 "높은 수준의 덕스러움과 낮은 수준의 덕은 다르다"

독립출판 무간 2017. 12. 15. 13:15


38

 

 

상덕上德, 부덕不德. 시이유덕是以有德. 하덕下德, 부실덕不失德. 시이무덕是以無德. 상덕上德, 무위無爲, 이무이위而無以爲. 하덕下德, 위지爲之, 이유이위而有以爲. 상인上仁, 위지爲之, 이무이위而無以爲. 상의上義, 위지爲之, 이유이위而有以爲. 상례上禮, 위지爲之, 이막지응而莫之應, 즉양비則攘臂, 이잉지而扔之.

고실도故失道, 이후덕而後德. 실덕失德, 이후인而後仁. 실인失仁, 이후의而後義. 실의失義, 이후례而後禮. 부례자夫禮者, 충신지박忠信之薄, 이란지수而亂之首. 전식자前識者, 도지화道之華, 이우지시而愚之始. 시이대장부是以大丈夫, 처기후處其厚, 불거기박不居其薄. 처기실處其實, 불거기화不居其華. 고거피故去彼, 취차取此.

 

높은 수준의 덕스러움(낮은 수준의) 과 다르다. (일부러 일삼거나 일부러 일삼고자 하지 않는) 덕스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낮은 수준의 덕(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은) 내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덕스러움이 없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덕스러움은 일부러 일삼지 않고, 일부러 일삼고자 하지 않는다. 낮은 수준의 덕(일부러) 그것을 일삼거나, (일부러 그것을) 일삼고자 한다. 높은 수준의 인(일부러) 그것을 일삼지만, (일부러 그것을) 일삼고자 하지는 않는다. 높은 수준의 의(일부러) 그것을 일삼고, (일부러 그것을) 일삼고자 한다. 높은 수준의 예(일부러) 그것을 일삼고, 그것에 따르지 않으면, 팔을 걷어붙이며, 그것에게로 잡아당긴다.

그러므로 도망가지고 (낮은 수준의) 이 뒤따르며, (의 운동모습 내지 작용상태인 높은 수준의) 덕스러움이 망가지고 인이 뒤따르며, 이 망가지고 의가 뒤따르며, 를 망가지고 예가 뒤따르는 것이다. 무릇, (내지 덕스러움) 충실함과 진실함의 얇아진 바로서, 혼란의 근원이다. 앞의 인, , 는 도(내지 덕스러움)의 껍데기로서, 어리석음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대장부는 그 두터운 바를 따르지, 그 얇아진 바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 알맹이를 따르지, 그 껍데기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기 때문이다.

 

 

(만물이) 얻는 바이다. (는 만물이) 언제 어디서나 얻게 하지, 잃게 하지 않는다. (만물을) 이롭게 하지, 해롭게 하지 않는다. 따라서 덕스럽다고 한 것이다. (만물이) 어떻게 덕스러움을 얻을 수 있는가? “를 말미암아서. (만물이) 어떻게 덕스러움을 다할 수 있는가? “로써 일삼아서. “로써 일삼으면, 싣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따라서 만물이 로써 일삼으면, 만물이 가지 못하는 곳이 없게 되는 것이다. (만물이) “로써 (일삼으면), 그 생겨남을 면하기에 부족하다. 따라서 하늘과 땅이 비록 넓지만, “로써 마음을 삼는 것이다. 비록 성인과 임금(의 위상)이 크지만, 텅 비움으로써 근본을 삼는 것이다. 따라서 (만물이 나고 자라며 시드는 모습을) “돌이켜 살핀다(吾以觀復 : 16)고 한 것인데, 그렇게 하면 하늘과 땅의 마음이 보이게 되며, 날마다至日 그것을 생각하면 앞선 왕들의 지극함이 보이게 된다. 따라서 그 사사로움을 없애고 그 을 없애면, 천하四海에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며, 멀든지 가깝든지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을 죽이지만, 그 마음을 남긴다면, 제 한 몸조차 스스로 온전히 지키지 못하게 되며, 살과 뼈가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德者, 得也. 常得, 而無喪. , 而無害. 故以德爲名焉. 何以得德? 由乎道也. 何以盡德? 以無爲用. 以無爲用, 則莫不載也. 故物無焉, 則無物不經. 有焉, 則不足以免其生. 是以天地, 雖廣, 以無爲心. 聖王, 雖大, 以虛爲主. 故曰以復而視, 則天地心見, 至日, 而思之, 則先王之至覩也. 故滅其私, 而無其身, 則四海莫不贍, 遠近莫不至. 殊其己, 而有其心, 則一體不能自全, 肌骨不能相容).

 

해 설

왕필주 德者, 得也(이하, 글자를 읽는 소리를 아울러 밝히지 않는다)”에서 의 대상은 만물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性命,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 : 25)”이다. 다시 말하면, 왕필에게 있어서 은 만물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하는 것이다.

왕필주 何以盡德에서 은 실천 내지 실현을 의미한다.

왕필주 由乎道也에서 따른다(: 25)”는 의미이다.

왕필주 以無爲用에서 없다는 뜻으로서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나 욕구,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일삼는다는 뜻으로서 감각하거나 지각하거나 의지하거나 행위한다는 의미이다.

왕필주 莫不載也에서 는 태어나게 하고, 자라게 하며, 시들게 한다는 의미이다.

왕필주 則無物不經에서 은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며 시드는 전체 과정을 의미한다.

왕필주 有焉, 則不足以免其生에서 의 원인으로서 개인적으로 지향하거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욕구나 가치,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름을 의미하며, 의 결과로서 제2장의 뛰어난 것”, “얻기 어려운 재화難得之貨”, 9장의 ”, “부유해지는 것고귀해지는 것”, 12장의 오색五色”, “오음五音”, “오미五味”, “말 달리며 사냥하는 것馳騁畋獵”, 13장의 총애”, 18장의 자애로움”, “효성”, “충신忠臣”, 19장의 성인이 되는 것”,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 “어진 것의로운 것”, “만들기 어려운 것”, “이롭게 하는 것”, 20장의 ”, 24장의 돋보이려고 발뒤꿈치를 드는 것”, “앞서 가려고 큰 걸음으로 걷는 것”, “따지거나 가리는 것自見”, “잘난 체하는 것自是”, “뽐내는 것自伐”, “우쭐거리는 것自矜”, 27장의 轍迹”, “瑕謫”, “籌策”, “關鍵”, “繩約등이 비슷한 부류에 속한다.

왕필주 以無爲心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왕필주 至日, 而思之, 則先王之至覩也에서 를 의미하며, 를 의미한다.

왕필주 故滅其私, 而無其身殊其己, 而有其心에서 , , , 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에 따른 감각, 지각, 의지, 행위를 의미한다.

왕필주 四海莫不贍, 遠近莫不至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無不爲 : 37)”는 의미이다.

왕필주 一體不能自全, 肌骨不能相容물고기가 연못을 벗어나는 것(魚不可脫於淵 : 36)”과 같은 문제상황(大患 : 13)”으로서, “다툼을 벌이고(: 3)”, “도둑질을 일삼으며(爲盜 : 3)”, “눈이 멀거나 귀가 멀거나 입맛이 망가지거나 행동이 어지러워진(令人目盲, 令人耳聾, 令人口爽, 令人心發狂, 令人行妨 : 12)”, “단절과 대립, 갈등과 투쟁이 중심이 되는 세상(常有欲, 以觀其徼 : 1)”을 비유한다.

 

 

 

따라서 높은 수준의 덕스러움을 따르는 사람은 오직 도이것을 일삼는다. (낮은 수준의) 을 일삼지 않는다. 그 덕스러움(일부러) 붙잡음이 없으며, (일부러) 일삼음이 없다. 따라서 덕스러움이 있는 것이며, 일삼지 못함이 없는(37)” 것이다. (일부러) 구하지 않는데 얻는 것이며, (일부러) 일삼지 않는데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덕스러움은 있지만, ‘덕스러움이라는 이름이 없는 것이다. 낮은 수준의 덕(일부러) 구해서 그것을 얻고, (일부러) 일삼아서 그것을 이루며, (일부러) 착한 것을 내세워서 백성을 다스린다. 따라서 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이다. (일부러) 구해서 그것을 얻게 되면, 반드시 잃어버림이 있게 된다. (일부러) 일삼아서 그것을 이루게 되면, 반드시 망가뜨림이 있게 된다. ‘착함이라는 이름이 생겨나면 착하지 못함일어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낮은 수준의 덕(일부러) 그것을 일삼으며, “로써 일삼는 것이(是以上德之人, 唯道是用. 不德. 其德, 無執, 無用. 故能有德, 無不爲. 不求而得, 不爲而成. 故雖有德, 而無德名也. 下德, 求而得之, 爲而成之, 則立善, 而治物. 故德名有焉. 求而得之, 必有失焉. 爲而成之, 必有敗焉. 善名生, 則有不善應焉. 故下德, 爲之, 而有以爲也).

 

해 설

왕필이 말한 붙잡음이 없음無執은 노자가 말한 팔을 걷어붙이며攘臂, 그것에게로 잡아당김而扔之이 없음을 의미한다.

왕필주 無不爲에서 일삼는다는 뜻으로서 감각하거나 지각하거나 의지하거나 행위한다는 의미이다.

왕필주 立善, 而治物에서 은 제도화 내지 형식화를 의미하며, 은 개인적으로 지향하거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욕구나 가치, 목표나 이상 등으로서 인, , 등을 의미한다.

왕필주 必有失焉必有敗焉에서 의 대상은 백성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이다.

 

 

無以爲(일부러) 치우치거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다는 뜻이다. 무릇, “無爲하지 못한 채, (일부러) 그것을 일삼는 것은 모두 수준 낮은 덕이다. “”, “”, 예절禮節이 그것이다. 장차, 덕스러움을 수준 높은 것과 수준 낮은 것으로 나누고, 수준 낮은 덕비교하여 말하면, 높은 수준의 덕스러움無以爲에 이른 것으로서 수준 낮은 덕끝점이다. 수준 낮은 덕중에서 수준이 높은 것을 따지면, “이 그것이다. “無以爲에 이르기에 충분하지만, 그래도 (일부러) 그것을 일삼는 (바가 있). “爲之, 而無以爲(기 때문이). 따라서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 있음(또는 로써 일삼음)(일부러) 그것을 일삼음은 환란(: 13)”이 되는 것이다. ‘근본無爲에 있으며, ‘어미無名(1)”에 있다. ‘근본어미를 내버린 채, 아들따른다면, 비록 이 크더라도, 반드시 구제하지 못함이 있게 된다. 비록 이름이 아름답더라도, ‘거짓됨이 또한 반드시 생겨나게 된다. (일부러) 일삼지 않고서 이루지 못하며, (일부러) 내세우지 않고서不興 다스리지 못한다. 때문에 (일부러) 그것을 일삼게 된다. 따라서 크게 두루 널리 시행함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렇게 된다는 사실) 그것을 아끼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아끼는데, 치우치거나 사사로이 하는 바가 없다. 따라서 수준 높은 爲之, 而無以爲라고 한 것이다(無以爲者, 無所徧爲也. 凡不能無爲, 而爲之者, 皆下德也. 仁義禮節是也. 將明德之上下, 輒擧下德以對, 上德至於無以爲, 極下德. 下之量上, 仁是也. 足及於無以爲, 而猶爲之焉. 爲之, 而無以爲. 故有爲, 爲之, 患矣. 本在無爲, 母在無名. 棄本捨母, 而適其子, 功雖大焉, 必有不濟. 名雖美焉, 僞亦必生. 不能不爲, 而成, 不興, 而治. 則乃爲之. 故有宏普博施仁. 愛之者, 而愛之, 無所偏私. 故上仁爲之, 而無以爲也).

 

해 설

왕필주 無所徧爲에서 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감각하거나 지각하거나 의지하거나 행위한다는 뜻으로서 치우침을 의미한다.

왕필주 上德至於無以爲足及於無以爲에서 足及가깝다거나 비슷하다는 의미이다.

왕필주 母在無名에서 無名덕스러움이라는 이름이 없다無德名는 의미이다.

왕필주 適其子에서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 있음(또는 로써 일삼음)有爲“(일부러) 그것을 일삼음爲之을 의미한다.

 

 

아끼되, 두루 하지 못하면, ‘바름참됨을 억누르거나 가로막게 된다. 그것을 당연하거나 합당한 것으로 여겨서,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 성내고, 굽히며, 부추기고, 다그친다. 저것을 도와주고, 이것을 공격한다. 사물(things)을 대하거나 사건(event)을 대하는 데 있어서, 사사롭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上義爲之, 而有以爲라고 한 것이다(, 不能兼, 則有抑抗正眞. 而義理之者, 忿, , , . 助彼, 攻此. 物事, 而有以心爲矣. 故上義爲之, 而有以爲也).

 

해 설

왕필이 말한 아낌은 노자가 말한 어짊(: 5)”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왕필이 말한 두루 함은 노자가 말한 추구처럼 대함(以萬物爲芻狗 : 5)”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왕필이 말한 억누름이나 가로 막음은 노자가 말한 “(일부러) 그것을 일삼음爲之이나 일부러 일삼고자 함(또는 로써 일삼음)而有以爲을 의미하며, 왕필이 말한 바름참됨은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한다.

왕필주 義理之는 앞선 왕필주 立善, 而治物과 의미가 통하는데, 를 의미하며, 을 의미한다.

왕필주 忿”, “”, “”, “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감각하거나 지각하거나 의지하거나 행위하는 양태 내지 양식을 의미한다.

왕필주 助彼, 攻此에서 당연하게 여겨진 것이나 합당하게 받아들여진 것으로서 일부러 일삼고자 한 바나 일부러 일삼은 바를 의미하며, 바른 것이나 참된 것으로서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한다.

왕필주 有以心爲는 앞선 왕필주 偏私와 의미가 통한다.

 

 

곧게 하되, 바르고 참되게 하지 못하면, 겉모양을 꾸미거나겉치레를 가꾸게 된다. 그것을 따라야 하거나 받들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서, (그것을) 가꾸는 것을 높이고, 받드는 것을 좋아하며(또는 반기며), (그것에) 나아가는 것을 본받게 하고, 벗어나는 것을 꾸짖는다.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냄과 화냄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上德, 爲之, 而莫之應, 則攘臂, 而扔之라고 한 것이다(, 不能篤, 則有游飾修文. 禮敬之者, 尙好修敬, 校責往來. 則不對之間, 忿怒生焉. 故上德, 爲之, 而莫之應, 則攘臂, 而扔之).

 

 

해 설

왕필주 , 不能篤에서 바르고 참되게 대한다는 뜻으로서, “추구처럼 대한다(以萬物爲芻狗 : 5)”는 의미이다.

왕필주 上德, 爲之에서 로 풀이했다.

 

 

무릇, 큼의 , 오직 ! (만물이) 그것에서 말미암아 이미 나아갔는데, 어찌 (그것을) 높이겠는가? 따라서 비록 활발하게 움직이더라도 크게 넉넉한 것이다. 만물은 오직 각자 그 덕스러움을 얻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물은) 비록 로써 일삼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만, (따라서) “로써 일삼아야 하지만(또는 일부러 일삼고자 하지 않아야 하지만), ‘을 버리지 못한다. “로써 일삼아야 하지만(또는 일부러 일삼고자 하지 않아야 하지만), ‘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 크게 됨을 잃게 된다. 이른 바, “失道, 而後德인 것이다(, 大之極也, 其唯道乎! 自此已往, 豈足尊哉? 故雖盛業大富. 而有萬物, 猶各得其德. 雖貴以無爲用, 不能捨, 無以爲, 體也. 不能捨, 無以爲, , 則失其爲大. 所謂失道, 而後德也).

 

해 설

왕필주 自此已往의 양면적 속성(二儀之道 : 4장 왕필주)”에 대한 부연이다. 는 도를 지시한다. 따라서 自此는 도가 만물을 나게 하고 자라게 하며 시들게 하는 근원임을 의미한다. 已往은 도가 만물이 나고 자라며 시드는 과정에서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함을 의미하는 동시에, 만물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로서, 다시 말하면 덕스러움으로서 만물 속에 내재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왕필은 豈足尊哉?”라고 반문한 것이다.

왕필이 말한 盛業大富에서 盛業그 날카로움은 꺾지만, 그 얽힘은 풀고, 그 빛남과 어울리지만, 그 티끌과 함께 하며(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 4)”, 만물에 두루 미치고(周行 : 25)”, 만물을 살게 하며, 을 이루게 하고, 입혀주고, 먹여주는(, 功成, 衣養萬物 : 34)” 것과 같은 도의 운동모습 내지 작용상태를 의미하며, 大富힘들어 하지 않는다(用之不勤 : 6)”는 의미이다.

왕필주 有萬物猶各得其德로 미루어 볼 때, 왕필이 말한 덕스러움은 만물 각자 속에 내재하는 나고 자라며 시드는 원리로서, 만물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이다.

왕필주 不能捨無以爲體에서 로써 일삼음有爲 내지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 있음 有以爲을 비유하는 것으로서,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른 감각(또는 감각하고자 함), 지각(또는 지각하고자 함), 의지(또는 의지하고자 함), 행위(또는 행위하고자 함)를 의미한다.

왕필주 失其爲大는 큼의 끝인 도처럼 크게 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로써 일삼으면, 어미얻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수고롭지 않게 되는 것이며, 백성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게 되는 것이다. 낮은 수준의 덕() 이것에서 (말미암아) 이미 나아갔지만, 일삼음의 어미를 잃어버렸다. (따라서 다스림에 있어서) “無爲하지 못한 채, (일부러 일삼아爲之而無以爲) 널리 시행함을 귀하게 여긴다(). (“無爲無以爲로써) 널리 시행하지 못한 채, (일부러 일삼은爲之而有以爲) ‘바름곧음을 귀하게 여긴다(). (“無爲無以爲로써) 바르게 하거나 곧게 하지 못한 채, (일부러 일삼은爲之而莫之應則攘臂而扔之) 겉모양이나 받듦을 귀하게 여긴다(). 이른 바, “失德, 而後仁. 失仁, 而後義. 失義, 而後禮인 것이다(以無爲用, 德其母. 故能己不勞焉, 而物無不理. , 此已往, 失用之母. 不能無爲, 而貴博施. 不能博施, 而貴正直. 不能正直, 而貴飾敬. 所謂, 失德, 而後仁. 失仁, 而後義. 失義, 而後禮也).

 

해 설

왕필주 德其母에서 얻는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는 도를 의미한다.

왕필주 能己不勞焉에서 는 통치자를 의미한다.

 

 

무릇, “(또는 덕스러움) “충실함진실함이 두텁지 못하고, 어울림소박함(; 素樸 : 19)이 드러나지 못한 채, (일부러 일삼아) 겉모양을 꾸짖거나 갖추게 하고, (따르지 않거나 벗어날) 기미機微가 있으면 다투거나 제재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바이자, “근원이 되는 바이다. 무릇,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그것을 (일부러) 일삼기 때문에, 거짓되게 된다. 하물며, 겉모양 꾸미기에 힘쓰는데,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따라서 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라고 한 것이다(, 禮也, 所始首, 於忠信不篤, 通簡不陽, 責備於表, 機微爭制. , 仁義, 發於內, 爲之, 猶僞. 況務外飾, 而可久乎! 故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也).

 

해 설

노자가 말한 忠信은 도또는 도의 운동모습 내지 작용상태인 덕스러움을 대상으로 삼는다면, 왕필이 말한 通簡은 만물 각자 속에 내재하는 도내지 덕스러움으로서, 만물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왕필이 말한 양면적 도의 속성을 감안할 때, 양자兩者가 본질적으로 상이相異한 것은 아니다.

왕필주 機微爭制에서 機微校責往來에서 와 의미가 통한다.

왕필주 仁義發於內, 爲之猶僞에서 는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하며, 爲之는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서 벗어난 채”, 일부러 그것을 일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왕필에게 있어서 도또는 덕스러움의 가장 원초적 작용모습 내지 작용상태이자, 인간의 가장 기본적 정서로서, “”, “”, “는 부정되지 않는다. 일부러 그것을 일삼거나爲之”, 그것을 일부러 일삼고자 함有以爲으로써, 그것이 거짓되게 됨이 비판될 따름이다.

왕필주 可久乎!”에서 忠信을 대상으로 삼는다.

 

 

前識백성으로 하여금 (일부러 일삼아) 앞서게 하거나, (일부러 일삼아) 나누거나 가르게 한다分別는 뜻이다. 바로, 낮은 수준의 덕을 따르는 부류(가 다스리는 방식)이다. 그 총명聰明을 사용함으로써 백성을 앞서게 하거나 나누고 가르며, 그 지력智力을 사용함으로써 많은 일들을 일삼는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통치자가) 비록 그 (백성의) 실정얻는다 하더라도 (그 백성의) 간사함과 교묘함이 더욱 치밀해지게 된다. 비록 그 (백성의) 칭송이 자자하다 하더라도 (그 백성의) 돈독함과 신실함을 더욱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비록) 노력하더라도 일들이 어지러워지게 되며, (비록) 힘쓰더라도 다스림이 어려워지게 된다. 비록 성스러움과 지혜로움을 사용하더라도 백성이 더욱 해롭게 된다. (그러나) ‘자신내버려 둔 채 백성을 따르면, (일부러) 일삼음이 없더라도 넉넉해진다. “素樸(19)”을 유지하면, (일부러 일삼은) 법령과 제도를 사용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낮은 수준의 덕을 따르는 부류가) 얻으려고 하는 바인 저것귀 기울이며, 유지해야할 바인 이것멀리하는 일은 도의 껍데기를 아는 것으로서, 어리석음의 근원이다(前識者, 前人而識也. 卽下德倫也. 竭其聰明, 以爲前識, 役其智力, 以營庶事. 雖德其情, 姦巧彌密. 雖豊其譽, 愈喪篤實. 勞而事昏, 務而治薉. 雖竭聖智, 而民愈害. 舍己任物, 則無爲而泰. 守夫素樸, 則不順典制. 聽彼所獲, 棄此所守, 識道之華, 而愚之首).

 

해 설

왕필주 前人而識에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서 앞서게 한다는 의미이며, 식별한다는 뜻으로서 분별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감각하거나(또는 감각하고자 하거나) 지각하거나(또는 지각하고자 하거나) 의지하거나(또는 의지하고자 하거나) 행위하는(또는 행위하고자 하는) 모습 내지 상태로서, “팔을 걷어붙이며攘臂, 잡아당기는而扔之모습 내지 상태에 비유될 수 있다.

왕필이 말한 聰明영리하고 기억력이 좋으며 재주가 있음을 의미하며, “智力은 사리事理를 밝혀서 잘 처리하고 헤아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왕필주 雖德其情에서 얻음을 의미하며, 은 통치자가 일삼는 내용을 따르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 통치자가 일삼는 방식을 좋아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등에 대한 모습 내지 상태를 의미한다.

왕필주 舍己任物에서 는 내버려 둠을 의미하고, 는 나누거나 가름 내지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음을 의미하며, 따름”(: 25)을 의미하고, 은 백성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한다.

왕필이 말한 篤實은 통치자의 다스림의 내용과 방식 등에 대한 백성의 신뢰(: 17)”를 대상으로 삼는다.

왕필주 無爲而泰에서 ”·“”·“에 대한 부정상태이다.

 

 

따라서 (통치자가) 진실로 그 (다스림이) 이 되게 하는 어미를 얻게 되면, 백성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게 된다. 백성을 살아가게 하는 것에 대해서 수고로워 하지 않게 된다. 일삼지만, () 모양을 드러내지 않게 된다. 다스리지만, () 이름을 붙이지 않게 된다. 따라서 (반대로) “의 이름이 높여질 수 있는 것이며可顯, 따름받듦의 이름이 귀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可彭. 무릇, (통치자가) 그것을 실음(: 10)”에 있어서 큰 도로써 하며, 그것을 막음(: 37)”에 있어서 무명(無名 : 37)”으로써 하게 되면, 백성이 (일부러 일삼아) “높이 받드는(: 3)” 바가 없게 되며,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게 된다. (따라서 백성으로 하여금) 곧고 바른 바를 저마다 따르게 하고, 바르고 참된 바를 섬기게 하며, 일삼게 하면, “이 두터움을 얻게 되고”, “를 실천함이 바르게 되며, “따르고받듦이 맑아지게 된다(故苟得其爲功之母, 則萬物作焉, 而不辭也. 萬物存焉, 而不勞也. , 不以形. , 不以名. 故名仁義可顯, 禮敬可彭也. 夫載之以大道, 鎭之以無名, 則物無所尙, 志無所營. 各任其貞, 事用其誠, 則仁德厚焉, 行義正焉, 禮敬淸焉).

 

해 설

왕필주 爲功之母에서 다스림(: 3)”을 의미하며, 는 도내지 덕스러움따르는(: 25)” 것으로서, 백성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 맡김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爲功之母무위(無爲 : 37)”를 의미하는 것이다.

왕필이 말한 은 삶의 양태 내지 양식을 의미하는데, 나고, 자라며, 죽거나 운동하고, 작용하며, 활동하는 모습 내지 상태를 포괄한다.

왕필주 不辭는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나누거나 가리지 않음(不自見 : 22)”을 의미한다.

왕필이 말한 것처럼 不勞할 수 있는 것은 백성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 맡기기 때문이다.

왕필주 用不以形에서 형벌제도를 의미하며, “御不以名에서 명분질서를 의미한다.

왕필주 名仁義可顯, 禮敬可彭에서 은 일부러 일삼아 꾸짖거나” “갖추게 한다는 의미이다.

왕필주 載之以大道, 鎭之以無名에서 흥하게 한다(: 36)”는 뜻으로서, “부추김이나 다그침”, “도와줌을 의미하고, 폐하게 한다(: 36)”는 뜻으로서, “억누름이나 가로막음”, “공격함을 의미하며, , 義 禮, 을 의미하고, 無名소박함(素樸 : 19)”이나 통나무”(: 37)로서 백성 각자에 내재하는 도내지 덕스러움,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한다.

왕필주 物無所尙, 志無所營에서 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감각하거나(또는 일부러 일삼아 감각하고자 하거나), 지각하거나(또는 일부러 일삼아 지각하고자 하거나), 의지하거나(또는 일부러 일삼아 의지하고자 하거나), 행위하는(또는 일부러 일삼아 행위하고자 하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

왕필주 各任其貞, 事用其誠, 則仁德厚焉, 行義正焉, 禮敬淸焉에서 其貞其誠은 백성 각자에 내재하는 도내지 덕스러움,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하며, , , 무위(無爲 : 37)”의 모습 내지 상태를 의미한다.

 

 

(통치자가) 그 실어주는 바를 멀리하고, 그 생겨나게 하는 바를 내버려 둔 , 법령 제도를 일삼고, 그 총명함을 사용하면, (백성의 일부러 일삼은) “바르고 참되어지며, (백성의 일부러 일삼은) “겨루어지고, (백성의 일부러 일삼은) “다투어진다. “의 덕스러움이 두터워지는 것은 (일부러) 일삼음으로써 달성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 실천이 바르게 되는 것은 (일부러) 일삼음으로써 성취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받듦이 맑아지는 것은 의 일삼음으로써 실현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통치자는) 그것을 싣는 데 있어서 로써 해야 하며, 그것을 거느리는 데 있어서 어미로써 해야 한다. (통치자가) 그것을 따르게 하더라도 (백성이) 높이는 바가 없게 되며, (통치자가) 그것을 받들게 하더라도 (백성이) 겨루는 바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통치자는) 무릇 이름할 수 없음無名을 일삼아야 한다. (나라의) 법령바르고 참되어지기 때문이다. (통치자는) 무릇 모양 없음無形을 일삼아야 한다. (나라의) 제도성취되기 때문이다. (통치자가) ‘어미를 지키면서 그 아들따르며, ‘근본받들면서 말단높인다면, (나라에) 제도법령함께 하게 되며俱有, (다스림에) 잘못이 생겨나지 않게 된다. 크게 아름다운 것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지 않는) 하늘과 짝하며, (크게) 빛나는 것(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지 않는다. 따라서 어미는 멀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근본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미에 의해서 생겨난 바이지, ‘어미’(의 덕스러움자체)가 될 수 없다. 장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바이지, ‘장인’(의 재능 자체가) 될 수 없다. 어미내버린 채 그 아들을 일삼으며, 근본을 멀리한 채 그 말단따르면, 법령에 분별됨생겨나며, 제도에 어긋남이 생겨나게 된다. 비록 그 큼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두루 하지 못함이 생겨나게 된다. 비록 그 아름다움을 담아낸다(또는 이룬다) 하더라도 반드시 근심거리와 걱정거리가 생겨나게 된다. 이 그것을 일삼음에 있는데, 어찌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따름에 만족하겠는가? (棄其所載, 舍其所生, 用其成形, 役其聰明, 仁則誠焉, 義其競焉, 禮其爭焉. 故仁德之厚, 非用仁之所能也. 行義之正, 非用義之所成也. 禮敬之淸, 非用禮之所濟也. 載之以道, 統之以母. 故顯之而無所尙, 彭之而無所競. 用夫無名. 故名以篤焉. 用夫無形. 故形以成焉. 守母以存其子, 崇本以擧其末, 則形名俱有, 而邪不生. 大美配天, 而華不作. 故母不可遠, 本不可失. 仁義, 母之所生, 非可以爲母. 形器, 匠之所成, 非可以爲匠也. 捨其母而用其子, 棄其本而適其末, 名則有所分, 形則有所止. 雖極其大, 必有不周. 雖盛其美, 必有患憂. 功在爲之, 豈足處也?).

 

해 설

왕필주 舍其所生에서 살아감을 의미하는데, “萬物存焉에서 과 의미가 통한다.

왕필주 用其成形에서 成形守夫素樸, 則不順典制에서 典制와 의미가 통한다.

왕필주 仁則誠焉, 義其競焉, 禮其爭焉에서 , , 은 백성들이 도내지 덕스러움,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 따라서 그렇게 하고자 하거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일삼아 그렇게 하고자 하거나 그렇게 하는 함으로써 높이 받들어 지거나(: 3)” “귀하게 여겨지기(: 3)” 위해서 그렇게 하고자 하거나 그렇게 하는 것으로서,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감각하거나(또는 감각하고자 하거나), 지각하거나(또는 지각하고자 하거나), 의지하거나(또는 의지하고자 하거나), 행위하는(또는 행위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 , 무위(無爲 : 37)”에 대한 부정적 모습 내지 상태를 전제한 표현으로서, 반의적反意的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왕필주 仁德之厚, 非用仁之所能也. 行義之正, 非用義之所成也. 禮敬之淸, 非用禮之所濟에서 덕스러움이 두터운, 실천이 바른, 받듦이 맑은는 도내지 덕스러움,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하고, 은 통치자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백성이 감각하거나 지각하거나 의지하거나 행위하도록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는 것을 의미하며, , , 은 도내지 덕스러움,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 따르는 것을 의미하고, , , 는 통치자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은 것을 의미한다.

왕필주 載之以道, 統之以母에서 을 의미하고, 는 그 덕스러움이 두터운 인仁德之厚”, 실천이 바른 의行義之正”, 받듦이 맑은 예禮敬之淸로서 도내지 덕스러움을 의미하며, 는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한다.

왕필주 顯之而無所尙, 彭之而無所競에서 을 의미하고, 는 통치자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은 , , 로서, 노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 충실함과 진실함이 얇아진 것忠信之薄이자, 껍데기에 해당하며, 無所尙無所競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不貴 : 3)”, 그것을 일삼고자 하지(可欲 : 3)” 않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心不亂 : 3)”는 의미이다.

왕필주 用夫無名. 故名以篤焉. 用夫無形. 故形以成焉에서 無名無形은 도내지 덕스러움,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하고, , , 과 의미가 통한다.

왕필주 形名俱有에서 俱有지켜진다또는 유지된다는 의미이다.

왕필주 大美配天, 而華不作에서 配天不作은 개인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지 않는다는 뜻으로서, 5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와 의미가 통한다.

仁義, 母之所生, 非可以爲母. 形器, 匠之所成, 非可以爲匠也에서 왕필은 보다 원인적이냐 또는 보다 결과적이냐, 보다 근본적이냐 혹은 보다 말단적이냐 차원에서 仁義, 形器을 상대적으로 구별區別한 것이지, 양분적兩分的 내지 이분적二分的 차원에서 절대적으로 차별差別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또는 非可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1)”, “大道廢, 有仁義(18)”, “낮은 수준의 덕과 다름不德낮은 수준의 덕을 버리지 않음不失德”, 덕스러움두터운 상태와 덕스러움얇아진 상태등과 같은 상관相關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왕필주 名則有所分, 形則有所止에서 은 백성이 그것을 피해갈 방법을 찾는 것(下知避之 : 17장 왕필주)”을 의미하며, 는 백성이 그것에 따르지 않는 것(其令不從 : 17장 왕필주)”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는 통치자, 법령, 질서 등을 백성이 업신여기는(侮之 : 17)” 것으로서, 백성 각자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 대한 통치자의 믿음이 부족하거나(信不足焉 : 17)” 통치자, 법령, 질서 등에 대한 백성의 믿지 못함(有不信焉 : 17)”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현상인 것이다.

왕필주 雖極其大, 必有不周. 雖盛其美, 必有患憂에서 은 선치善治 내지 선정善政을 의미하며, 不周患憂는 착오 내지 오류가 있는 모습 내지 상태를 의미한다.

왕필주 功在爲之, 豈足處也?”에서 그 실어주는 바其所載’, ‘그 생겨나게 하는 바其所生’, ‘’, ‘어미’, ‘이름할 수 없음無名’, ‘모양 없음無形’, ‘근본등을 의미하고, 그 법령과 제도其成形’, ‘그 총명함其聰明’, ‘제도’, ‘법령’, ‘아들’, ‘말단을 지시하며, 지킴’, ‘받듦’, “따름등을 의미하고, 의 결과로서 법령이 바르고 참되어지거나名以篤’, ‘제도가 성취되거나形以成’, ‘제도와 법령이 함께 하게 되는 것形名俱有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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