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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대패질을 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다...!

독립출판 무간 2016. 10. 4. 14:19

시가 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쓰고 싶어도 막막해질 뿐 마음은 깊은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습니다. 설혹 시가 써졌다 해도 이런 기삭 나와 독자들의 현실적 삶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어 깊은 자괴감에 빠지고 맙니다.

이럴 때 저는 '아, 내가 준비가 부족하구나. 내 영혼에 다시 쓸모없는 살이 쪘구나. 좀 더 대팻날을 갈아야 하겠구나'하고 자성하게 됩니다. '시를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절박함이라는 대팻날, 꼭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될 필연성이라는 대팻날이 무뎌졌구나'하고 자탄하게 됩니다.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할 때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목수가 더 이상 대패질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시인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면 괜찮으나 불행히도 저는 시인이길 원합니다.

그동안 저는 잘 갈아 준비한, 날 선 대패 하나가 제 손에 들려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소 게으르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시의 대패질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대패질을 하는 데만 마음을 쏟았지 정작 대패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대팻날은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뎌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제가 그동안 결핍을 느끼기에는 너무 만족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합리에 순응하고 타협해 버리는 가운데 삶의 비의들을, 삶의 비극들을 외면해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단 한 번의 대패질을 위해서라도 다시 노력이라는 대팻날을 갈아야 합니다. 시는 나 자신만을 위해 배설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소통의 언어이므로 항상 새로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오줌을 누는 일이 아니라 밥을 먹는 일입니다. 밥을 먹고 똥을 누는 일이 아니라, 통을 누기 전에 먼저 밥을 먹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밥을 먹을 때마다 새 밥을 먹길 원하지 식은밥 먹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시도 그렇습니다. 시도 항상 새로움의 밥을 먹길 원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항상 새 밥을 짓는 사람입니다. 항상 공부해야 하고 사물과 인생의 현상과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고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혀야 하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을 하다 보면 열심히 하는 데도 일이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 내가 지금 대팻날을 더 갈아야 할 때구나'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대패질을 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습니다. 붓을 들어 글씨를 쓰는 시간보다 먹을 가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습니다.

박완서 선생도 마흔이 넘어서야 작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찍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일찍 이룰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일찍 핀 꽃이 튼튼한 열매를 맺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얼마만큼 오랜 시간 동안 참고 견디며 얼마나 정성껏 준비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집을 짓는 것만 봐도 땅을 깊이 파면 팔수록 건물의 높이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0층 짜리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 걸 보니 오랫동안 깊게 땅파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5층짜리 아파트 짓는 걸 보니 단시일 내에 너무 땅을 앝게 파서 저렇게 해서 지은 집이 과연 튼튼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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