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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1 본문

사는 이야기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1

독립출판 무간 2016. 10. 6. 06:11

이 말은 1997년에 낸 제 시집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많은 오해가 뒤따랐던 제목이기도 하고요. 시가 역설과 반어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떤 이는 "이 시집은 사람하는 사람한테는 못 사주겠네"하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사랑하다가 죽여버려라"하고 말하기도 하고, 또 가까운 벗들은 술자리에서 "자, 술 먹다가 죽어버리자"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시가 역설과 반어의 방법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우스운 말이지만, 정말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에 이르도록 진정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시의 내면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가슴을 지닌 사람이라면 바로 이해되는 말로 사랑의 깊이와 무게를, 그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말입니다.

실은 제가 이 시집의 제목을 이렇게 정하게 된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해인사에서 발간되는 월간 '해인'지를 정기 구독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해인'지를 꼭 읽었습니다. 제가 잘 이해할 수 없는 경전을 어렵게 해설해 놓은 책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잔잔하게 숨어 있는 불성을 저절로 깊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책이어서 불교에 대해 무지했던 제 마음이 조금씩 눈을 떠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큰스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저는 그 말씀을 읽는 순간, 등골이 송연해졌습니다. 아니, 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으며, 마음 속에 큰 바위 하나가 '쿵쿵' 소리를 내며 끝없이 굴러가는 듯했습니다.

저로서는 참으로 충격적인, 강한 질책의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 나는 아직 이 나이가 되도록 사랑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가. 아직 이 나이가 되도록 사랑에 그토록 연연하는가.'

누가 죽비로 제 마음을 강하게 내리친 것 같아 저는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동안 사랑을 하면서도 진실된 사랑을 하지 못했다는, 그러면서도 또 사랑의 벼랑 끝으로 뻗쳐나온 나무뿌리에 매달린 삶을 살아왔다는, 그런 후회와 반성이 뒤섞인 자책의 마음이 그만 저를 주저않게 하고 말았습니다.

사랑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심지어는 자기의 목숨마저 내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내어주기는커녕 얻으려고만 한 제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초라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제 어머니가 제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면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면서도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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