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에도 전심전력을 다한다 1 본문
호랑이 한 마리가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달려가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그려봅니다. 호랑이로서야 토끼 같이 하잘 것 없는 것은 한 주먹감도 안 되기 때문에 슬슬 느릿느릿 가다가 앞발로 한번 툭 건드려 잡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는 데도 있는 힘을 다합니다. 200킬로그램의 몸으로 100미터를 5초에 달리는 속도로 달려가 순식간에 완벽하게 처리합니다.
이번에는 토끼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봅니다. 호랑이에게 쫓기는 토끼는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까 포기하고 그만 주저앉아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토끼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호랑이의 일격이 날아들 때까지, 1초 뒤에 당장 호랑이한테 잡혀 죽는다 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칩니다.
그런데 그런 호랑이보다 못하고 토끼보다 못한 게 바로 인간인 제 자신입니다. 저는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는 일이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하려 들고 게을러집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 하는 마음으로 일찍 판을 거두어버립니다.
저는 시인이므로 시 쓰는 일에 가장 전심전력을 다해야할 책무를 지닌 사람입니다. 그러나 시를 생각하는 날보다 시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날이 더 많습니다. 정작 시를 쓸 때도 제 마음에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이 다 소진될 때까지 쓰지 않습니다. 쓴 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떤 때는 서둘러 발표해 버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남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사랑하다가 잃어버리는 게 많다 하더라도 아예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정성과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것도 알아듣지 못하시느냐"고 그만 음성을 높이고 화를 냅니다. "노인이 무슨 그런 잔잔한 일에까지 신경을 쓰느냐, 제발 좀 아들하는 대로 잠자코 계시라"고 잘라 말함으로써 아버지의 마음을 크게 상하게 합니다.
지하철 계단에 앉아 구걸하는 걸인이나 전동차를 떠도는 시각장애인들을 만나면 아무리 주지 않아도 천 원짜리 한 장은 주자고 다짐한 적이 있었으나, 그것조차 다짐으로 끝나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서울역에 가면 노숙자들이 잠을 잔 의자에서 역한 냄새가 납니다. 그들의 그 가난한 냄새를 싫어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고도 어느새 얼굴을 찌푸린 채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제 저도 호랑이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일일지라도 제가 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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