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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 변화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아주 깊게 생각해 볼 필욕 있다!

독립출판 무간 2016. 9. 3. 09:48

어떤 사회든 변화의 소용돌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과 구조적으로 희생당하는 계층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을 외면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이들을 소외하는 변화는 바른 방향이 아니다. 이럴 때 '지금의 이 변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것을 아주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변화의 속도를 어느 정도 늦추더라도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를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로 이 안전망이 인권과 직결되는 사회복지다. 전통적 신분제사회, 농경사회에서는 사회적 취약계층이 환과고독, 즉 남편 없는 여자(과부), 부모 없는 어린이(고아), 자식 없는 노인(독거노인)이었다. 홀아비나 과부가 취약계층으로 편입되었던 것은 전통사회의 생활구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아주 확실하게 나뉘어 있었다. 여자는 밥하고, 빨래하고, 아기 돌보는 일을 했고, 남자들은 나가서 농사를 지었다. 이런 사회에서 과부가 되면 혼자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바로 절대빈곤계층이 되어버렸다. 아무런 사회적 혜택도 박을 수 없었고, 마치 주인 잃은 개처럼 사회적 냉대와 무시를 받았다. 과부보다는 사정이 나을지 몰라도 혼자 남은 홀아비 신세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녀의 역할을 엄하게 나눴던 가부장제사회 속에서 바느질이나 빨래, 음식 만들기를 할 수가 없으니 여자가 없다는 것은 아주 곤란한 일이었다. 재혼이 금지된 사회에서 이들은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했다.

 

근대 이후, 가부장적 질서가 무너져 재혼이 허용되고 사회 분위기가 변하면서 과부와 홀아비는 사회적 보호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여자들도 바깥에 나가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고, 남자들은 세탁소나 식당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회보장제도가 없었던 전통사회에서 부모 없는 아이는 돌보는 이 없는 버려진 아이였고, 자식 없는 노인 또한 돌보는 사람 없는 버려진 계층에 속했다. 이들은 근대사회에서도 계속 취약계층이었다. 근대사회에서는 이들을 집단적으로 수용해서 보호했다. 그것이 고아원과 양로원이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입양을 통해 가정에서 보호함으로써 고아원은 줄어들었다.

 

장애인은 그대 이후 사회가 돌보아야할 계층으로 편입되었다. 그들은 전통사회에서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툭하면 '병신이 육갑 떤다'라는 식의 인격적 무시를 당하고 정상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인권에 눈을 뜨면서부터 비로소 장애인도 인격적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주로 노인문제, 고아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장애인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이 우리사회에도 늘어나고 있다. 초기의 장애인 복지시설은 사람들을 한군데에 모아서 수용하는 시설의 개념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사회인식이 변하면서 그 질적 수준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근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새로운 사회적 취약계층이 생겨났다. 도시에서는 값싼 노동력이 대량으로 필요했지만 사람들은 도시로 간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과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도시의 삶이 농촌의 삶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보장해 주어야만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비싼 노임을 지불하게 되면 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 결국 값싼 노동력을 구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농사를 지어서는 도무지 살 수가 없을 만틈 농산물 값을 떨어뜨려 버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빚에 몰려 하나둘씩 도시로 떠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노동력이 몰려오고 실업자가 도시 주위에 많아지자 공장주들은 아주 값싸게 공장을 돌릴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형편없는 임금을 받았지만 쌀값이 워낙 쌌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저임금, 저곡가 정책은 한 패키지처럼 붙어 있었다. 이렇게 되자 무너진 농촌에 남아 있던 농민들마저도 뒤늦게 도시로 일단 나오기는 했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해 노동자가 되지 못하고 도시빈민들이 되었다. 이렇게 산업사회에서 새롭게 발생한 취약계층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이 농민운동, 도시빈민운동, 노동운동이었다. 지난 3, 40년 동안 이런 취약계층의 권익옹호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투쟁했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투쟁의 역사가 이미 100년을 넘었다.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대량 실업자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경우는 1990년대부터의 일이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서유럽사회의 실업률은 평균 10%다. 실업률이 높아졌다고 하면 12~13%정도 되고, 7~8%가 되면 아주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 우리는 실업률이 4%대에 불과한 데도 난리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서구사회는 실업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실업률이 높아도 나름대로 사회가 안정을 유지한다. 서구에서는 실업자에게 원래 그 사람이 받던 월급의 50~80% 정도를 실업수당으로 지급한다. 미국은 직장을 그만두어도 6개월 동안 월급이 정상적으로 나오고, 6개월 후부터는 실업수당이 나온다. 이 정도로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직장을 잃게 된다고 해서 그렇게 크게 절망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노동쟁의에 목숨 거는 일도 없고, 기업환경이 나빠져 구조조정을 하면 비교적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회적 안전망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사회처럼 대량 실업이 발생하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가장이라는 책임의 무게가 서구사회에 비해서 더 크기 때문에 더 절박하기도 하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식을 대학까지 공부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서양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하는데, 우리는 대학교육에 결혼준비, 집 사주는 것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실업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이다. 대기업에서는 학자금 대출도 해 준다. 또 직장에 다닐 때 집안에 애경사가 있으면 부조금이 많이 들어온다. 따라서 직장을 잃으면 월급뿐만 아니라 모든  수입이 끊기게 된다.

 

이렇게 살아가는 문화나 사회의 구조 자체가 다른데 우리 문제를 서구식 방법으로 풀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실업자문제가 가장 큰 문제이다. 정부가 고민 끝에 내놓은 것이 '공공근로제'인데, 실업자들을 데려다 놓고 빈둥빈둥 놀리고 돈을 주는 식의 방법은 임시처방은 될지 몰라도 결코 올바른 해결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몸이 아프다고 아편이나 마약을 주사해 주는 것과 같아서 부작용이 훨씬 큰 방법이다.

 

(법륜지음,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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