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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항아리와 장독대 1

독립출판 무간 2016. 8. 21. 20:08

지난 해 한 여름부터 쌓기 시작한 장독대가 올 4월 초에 마무리되었습니다. 변산 부안 김씨 재실 한 귀퉁이에 쌓기 시작한 것인데, 장독대터는 원래 쓰레기장으로 십여 년이 넘게 주변에서 생긴 온갖 쓰레기를 거기에 다 버려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던 데다가 재실에 사는 사람들의 위생이도 문제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농약병만 하더라도 몇 백개가 거기에 버려져 있었을까요. 그 음습한 곳을 정리해 태울 것은 태우고 땅에 묻을 것은 묻고 따로 모아 처리할 것은 처리하고 장독대 터를 닦는데 처음 변산으로 이주했던 젊이들의 고생이 많았습니다.

 

산자락을 조금 까까아 음습하고 움푹 파인 쓰레기장을 메우고 판판하게 터를 닦고 보니 아래 위 합해서 100평 남짓 되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장독대 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 공사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타고난 심미안을 지닌 전관유 군이 맡기로 했습니다. 산자락에서 나온 돌 섞인 황토흙을 체로 쳐서 짚을 썰어 넣고 밟아 장독대 벽을 쌓아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에 시작한 공사는 가을까지 이어졌습니다. 또 농사짓는 틈틈이 전주로, 줄포로 숨쉬는 옛 항아리들을 모으러 다니느라 일의 진행이 더디었습니다.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 변두리로 살길 찾아 떠난 이농민들의 빈 집에 덩그렇게 남아 깨질 날만 기다리고 있던 장독들이 한두 개씩 모여 500개가 넘었는데, 장독대 일은 마무리되지 않아 쌓다 말고 겨울을 맞았습니다. 장독대를 둘러싼 흙담 가운데 일부는 강회와 진흙을 섞어 마감질까지 해두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야, 한 겨울 추위에 짚을 섞은 토담과 강회 섞은 겉흙 사이가 들떠서 다시 손 볼 수밖에 없는 때가 와서야, 흙일은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겨울 추위는 흙담마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속살까지 얼어붙었던 흙이 봄비에 녹으면서 부풀어올라 담을 밀어내자 흙담 곳곳이 맥없이 무너져내렸습니다. 한 군데는 두 번이나 무너져내려 세 번을 다시 쌓아야 했습니다. 그 때마다 전 군은 고집스럽게 다시 달라붙어 새로 이 흙담을 쌓아올렸습니다. 이 일은 가을까지 이어졌습니다. 서리가 내리고 땅이 얼어들기 시작할 때쯤에 내년 봄으로 다음 작업을 미루었는데, 한 겨울 추위가 닥치자 담벽에 진흙과 섞어 바른 강회가 부슬부슬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겨울에 내린 눈이 녹아 흙에 스며들어 추위에 다시 얼자 땅이 부풀어올랐습니다. 군데군데서 토담이 무너졌습니다. 무너진 것을 다시 쌓아올렸더니 이번에는 봄비가 내려 또 허물어뜨렸습니다. 무너진 데를 다시 쌓아올리고 마무리되지 않은 작업을 하느라고 4월 초순까지 전 군은 눈 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장독대가 완성되었습니다. 그 동안 재실 마당과 밭에 앉혀 두었던 장독들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은 식목일 연휴를 맞아 일손을 도우려고 온 보리출판사 식구들과 일손도 도울 겸 취재도 할 겸해서 거제도에서 온 대우조선 노보 편집부 식구들이 맡았습니다. 어떤 것은 두 사람이 옮겨야 하고, 어떤 것은 네 사람이 달라붙어야 하는 이 숨쉬는 옛 항아리들을 장독대에 올리느라 애들을 무척 많이 썼습니다. 500개가 넘는 항아리 가운데 300개 가량을 옮겨서 빼곡이 쌓았는데, 이 항아리들에는 앞으로 여러 가지 자연식품들이 담길 것입니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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