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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마음의 거울

독립출판 무간 2016. 8. 21. 20:01

지난 겨울에 갑자기 피부병이 악화되어 집으로 치료를 받으러 갔던 공동체 식구 종현이가 다시 돌아왔다. 워낙 오래 앓던 지병이란 한두 달 치료해서 고쳐질 질환이 아닌데 시골에서 맑은 공기를 쐬면서 바깥일을 하다가 도시에서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완치되지 않은 채로 다시 오게 되었는데 변산에 오지 못한 몇 달 사이에 체중이 5kg 가까이 오르고 얼굴빛도 건강색을 되찾았다.

그런데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예년처럼 다시 피부병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치료할 길이 찾다가 단식과 자연 치료요법으로 고질병을 많이 고친 장두석 선생과 의논했다. 수월찮은 비용을 마련하여 보름 동안 장 선생이 지도하는 민족 생활의학 강습에 보내 단식과 자연치료 요법으로 피부질환을 다스리기로 했다.

 

피부병은 장기치료가 요구되어 집에 가서도 단식을 자주 하고 생식을 하라는 장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온 종현이는 한 동안 현미, 통, 보리, 녹두, 밀을 절구에 찧어 만든 오곡 생식을 부지런히 했다. 그러다보니 자꾸 허기가 지는 것 같았다. 식구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 이것저것 몸에 해롭다고 여겨 먹지 말았으면 싶은 음식에 손을 대더니, 다시 피부병이 악화되었다. 형과 누나들이 잔소리를 하고 야단을 치면 섭섭해서 뚱하니 볼이 부르트거나 눈물을 쏟는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청주에 오가는 차비까지 30만원 가까이 치료비를 쓴 데다가 같이 지내는 형이 가끔 해수탕에 데려가 목욕을 시키는 정성을 기울이는데도 이렇게 제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풍욕이나 냉온욕을 자주 하라 했는데도 춥다고 하는 둥 마는 둥하고 따뜻한 방 안에 있기만 좋아하니 형과 누나들도 걱정이 겹치니까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함께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다른 식구들은 종현이 보기에 맛있는 음식을 자유롭게 먹으면서 자기에게만 먹지 못하게 하니 숨어서라도 먹고 싶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종현이와 함께 밥상을 따로 차려 먹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다. 마침 식구 가운데 채식을 좋아하고 생식에도 관심이 있는 여자분이 있어서 곧 동네 빈 집으로 가서 따로 식사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좋겠다고 한다.

 

실제로 공동체 형과 누나들이 종현이에게 기울이는 관심은 친동기간 못지 않다. 갈옷이 살갗에 들러붙지 않고 땀을 잘 흡수한다 하여 그 동안 감물을 들여 애지중지 아껴놓았던 광목을 아낌없이 끊어 내의도 만들어 입히고 바지도 만들어 입혔다. 그리고 생식만 하면 허기가 지는 것은 당분간 당연하리라 여겨 당근을 뽑아 먹인다. 겨울인데도 아직 파릇파릇하게 돋아오르는 냉이를 캐다가 뿌리째 깨끗이 씻어 종현이 앞으로 내민다. 생수를 챙겨 먹인다... 곁에서 보기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때가 많다.

 

하루는 손님이 빵을 사 왔다. 마침 참 때도 되어 출출했던 터라 상에 빵덩어리를 놓고 한 움큼씩 뜯어먹고 있는데, 아차 종현이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잊었다. 아니나다를까, 한참 동안 우리가 빵을 먹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던 종현이의 손이 무심코 빵을 뜯어 입으로 간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 정신을 차린 듯 시끌벅적하던 밥상머리에 갑자기 침묵이 흐른다.

 

나이는 스물이 훨씬 넘었지만 생각이 단순하고 충동을 잘 억제하지 못하는 종현이에게 자제력이 없다고 꾸짖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 아이가 자기의 생각과 느낌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더라도 꺼리낄 것이 없는 생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앞서야할 일이다. 생각은 이렇게 하는데도 막상 현실에 부딪치면 뒤늦게야 깨우치고 후회하는 일이 많다. 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은 이렇듯 타성에 젖어 자기 판단 기준만 고집하는 어른들에게 세심한 배려와 주의력이 삶의 매순간마다 필요함을 수시로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옳은 말이다. 종현이는 우리 마음을 그대로 맑게 비추어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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