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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라고 여겼던 것이 농사의 훼방꾼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땅에 뿌려준 고마운 먹이라면 어떨까? 본문

사는 이야기

잡초라고 여겼던 것이 농사의 훼방꾼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땅에 뿌려준 고마운 먹이라면 어떨까?

독립출판 무간 2016. 8. 21. 20:05

아이들이 방학을 기다리고, 도시 직장인들이 휴일이나 여름 휴가철을 기다리듯이 농사일에 눈코 뜰 새 없는 우리는 비오는 날만 기다린다.

 

우리 어렸을 때 공사판에서 날품을 팔던 아저씨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가사에도 있듯이 '우리가 놀면 놀고 싶어서 노나. 비 오는 날이면 공치는 날이지." 요즈음처럼 땡볕에서 밭에 나가 사는 날이 계속되다 보면 비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더 절실하다. 밭에 심어놓은 곡식이나 야채가 목말라하거나 땅 쏙에서 비를 기다리는 씨앗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지난 여름에 우리 변산 공동체 식구들은 여름 내내 아침을 걸렀다. 아침에 배를 비우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나마 시원해서 일하기 덜 힘드는 때가 아침 이른 시간이거나 해가 뉘엿뉘엿해지는 저녁 무렵인데, 아침 밥상머리에서 그 서늘한 때를 허송하는 게 영 아까웠기 때문이다. 아침에 우는 새도 배가 고파 운다는데, 한창 때라서 돌이라도 삭일 위장을 지닌 젊은이들이 스스로 그런 결정을 하는 데는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올 여름에는 아마 상황이 바뀔 듯 싶다. 지난 여름에는 '잡초'들과 전쟁을 했는데, 올해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잡초'들과 날마다 땡볕 속에서 싸워야 할 상황이 빚어졌던 것은 우리가 가꾸는 농작물들이 '잡초'와 공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에 '잡초'라고 여겼던 것이 농사의 훼방꾼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땅에 뿌려준 고마운 먹이라면 어떨까? 따로 가꾸지 않고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약초나 나물의 일종이라면? 올 이른 봄에 겪었던 '잡초' 사건이 기억난다. 마늘밭을 온통 풀밭으로 바꾸어놓은 그 꽤씸한 '잡초'들을 죄다 뽑아던져 썩혀버린 뒤에야 그 풀들이 '잡초'가 아니라 별꽃나물과 광대나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정갈하게 거두어서 나물도 무쳐 먹고 효소 식품으로 바꾸어도 좋을 약이 되는 풀들을, 내 손으로 그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돋아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대시하여 죄다 수고롭게 땀 흘려가며 뽑아 버렸으니 어리석기도 하지.

 

정말 '잡초'가 두렵다면 '잡초'와 공존할 수 있거나 '잡초'를 이겨낼 농작물을 심고 가꾸면 된다. 밭에 보리와 밀을 심었더니, '잡초' 걱정이 덜하다. 그렇다고 한 해 내내 밀 보리 농사를 지을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도 강구해야겠지. 논에 오리나 우렁이를 풀어놓아 '잡초'를 먹고 자라게 하는 농법도 유기농을 하는 분들 사이에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도 올해는 논에 우렁이를 길러 벼농사 겸 우렁이 농사를 하기로 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논이나 밭에서 자라는 '잡초'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아 그것이 정말 잡초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나물과 약초인데 몰라서 그냥 '잡초'로 치부해버리는 것인지 판가름하는 것이다. '잡초로 알았던 것이 잡초가 아니라 땡볕을 무릅쓰고 풀이 돋아나자마자 호미로 긁어내는 수골르 할 필요가 없다.

 

지렁이가 우글거리는 살아 있는 땅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들 가운데 대부분은 잡초가 아니다. 망초도 씀바귀도 쇠비름도 마디풀도 다 나물거리고 약초다. 마찬가지로 살기 좋은 세상에서는 '잡초 같은 인생'을 찾아보기 힘들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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