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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이야기 : 어찌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21. 20:15

비가 내리고 들일을 쉬는 틈을 타 이 이야기를 씁니다. 새해 들어 오월까지 가뭄이 들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유난히 봄비가 잦습니다. 사실, 저희 변산 식구들은 지난 해부터 지금까지 틈틈이 읍내나 대처를 다녀온 때를 빼고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뉴스나 일기예보를 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혀를 차는 분도 있지만 뉴스라는 것이 늘 도회 사람들의 관심사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쩌다 농촌 사정을 비춘다 해도 어떤 사람은 외국에서 들여온 무슨 과일을 비늘하우스에 키워 떼돈을 벌었다더라, 또 어떤 사람은 꽃농사를 지어 큰 소득을 올렸다더라는 별난 사람들의 별난 농사 소개가 대부분이라 보는 시간이 아깝기 일쑤이고, 일기예보라는 것도 미리 들어서 크게 도움을 얻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올해처럼 잘못된 일기예보를 믿고 긴 가뭄에 대비해서 밭에 우물을 파고 가뭄에 견디는 작물을 심은 사람은 공연히 큰 손해를 입는 일도 종종 있으니까요.

 

말머리가 길어졌는데 이번에는 비닐 얘기를 할까 합니다. 도시에서 오래 살아온 저는 비닐 공해가 도시 사람들의 문제인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비닐봉지, 비닐팩, 비닐포장, 비닐끈... 그러나 농사를 지으면서 땅을 죽이는 것은 다만 제초제나 화학비료나 농약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 전에 몇 년 묵혀 놓은 산비탈 밭 500평을 쌌는데, 땅을 소개해 준 분은 밭을 묵혀두었기 때문에 아마 아카시아 뿌리가 온 밭을 다 얽고 있을 것이고 칡넝쿨이 그물처럼 덮고 있을 것이라고 걱정을 하시더군요. 몇 해만 더 묵히면 야산으로 바뀔 것이 뻔한데 그 밭을 그렇게 묵혀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산비탈에 있어서 경운기를 쓸 수가 없으니 쟁기로 밭을 갈고 지게로 거름이나 수확한 곡식을 날라야 하는데, 일손도 없고, 있다해도 거의 모두가 예순이 훨씬 넘은 노인네들뿐이어서 그런 밭은 가꿀 힘이 없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터잡고 사는 이곳에도 묵정밭이 곳곳에 눈에 띕니다. 개중에는 아예 가시덩굴과 칡넝쿨이 우거져 못 쓰게 된 땅도 많습니다. 전국 각지 어디나 마찬가지겠지요. 이런 땅을 보면 마음 아프지만 저희로서는 은근히 반갑기도 합니다. 밭을 망치지 않으려고 공짜로 땅을 내주는 것도 반갑고, 여러 해 묵는 동안 그 동안 뿌렸을지도 모르는 제초제나 화학비료나 농약의 독성이 얼추 빠져났을 터이니, 유기농을 하려는 저희 뜻에 맞는 땅이어서도 반갑습니다.

 

이번에 산 땅 500펻도 묵은 지가 꽤 여러 해 되어 소개해준 분의 걱정대로 밭이 아카시아 뿌리와 칡넝쿨과 가시덩굴 투성인지리 다시 제 모습을 찾게 하는 데 땀깨나 뺐습니다. 한 가지 실수한 게 있기는 해요. 아카시아 뿌리를 뽑아내는 데 진땀을 쏟았는데 알고보니 아카시아 뿌리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켜 땅을 다시 거름지게 한다는군요.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비닐이었습니다. 쓰다 만 비닐을 대강대강 걷어서 밭가에 쌓아놓은 것도 산더미인데 미처 걷어내지 못해서 밭에 깔린 비닐은 태산입니다. 겉에만 깔린 게 아니라 밭 속에도 갈기갈기 찢어진 비닐 조각이 널려 있어요. 태워도 문제고 안 태워도 문제입니다. 공기를 오염시키느냐 땅을 오염시키느냐 선택은 둘 가운데 하나밖에 없으니 어찌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사는 어른들은 태연합니다. 대강 끌어 모아 밭둑에 쌓아놓고 불을 지르면 그만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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