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고향 그립지 않아? 보따리 싸들고 아예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으면 더 좋겠어! 본문
추석이 왜 좋은지 알아? 휴가 얻어 모처럼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과 일가친척을 찾아 볼 수 있어서? 아무렴. 그것도 좋은 이유 가운데 하나지. 그렇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은 사람들 이야기고, 본디 우리네가 거의 모두 시골에서 살던 시절에는 추석 좋은 까닭이 따로 있었지.
우리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애고 어른이고 추석 때까지 쉴 틈이 없었거든. 어디 일이 한두 가진가. 제사상에 놓을 밤, 대추 따는 일은 일도 아니야. 소 꼴 먹이는 일도 그게 어디 일인가 놀이지. 벼가 익어가기 시작하면 올벼를 심는 논에 참새떼들이 까맣게 몰려드는데 이놈들을 쫓지 않으면 뜨물이 생긴 벼이삭을 다 망쳐놓지 뭐야. 실에다 빈깡통을 매달아 딸랑거리면서 새를 쫓는 애들은 그래도 양반이야. 그 때는 깡통문화가 미군들 씨레이션 상자에 갇혀 있던 때라서 깡통이 여간 귀했던 게 아니야. 그러니 팔매질을 해서 새를 쫓아야 하는데 돌이나 나뭇가지를 논에다 던져 넣을 수는 없잖아. 대나무 막대 끝을 십자로 쪼개 그 틈새에 젓가락만하게 대를 깎아 틈을 벌려놓은 다음에 그걸 논흙에 쿡 박으면 대통에 흙이 담겨. 그걸 어깨 너머로 한껏 젖혔다가 있는 힘 다해서 앞으로 휙 뿌리면 대통 속에 들어 있던 흙덩이가 새들 있는 곳으로 날아가. 처음 할 때는 재미있는데, 하루에도 몇십 번 그 팔매질을 하고 나면 아이고 팔이야, 아이고 팔이야, 정말 어깨가 무릎 아래까지 늘어지는 것 같아. 그 많던 참새들 다 어디로 갔는지, 이제 도시에서도 노점에서 참새를 구워 파는 포장마차집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어. 아마 논밭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제초제, 농약 때문이겠지.
도토리 주워 묵 만들어 먹고 알밤 까서 아궁이에 넣어 구워 먹던 것도 다 옛날 일이야. 도토리 주우러 다닐 애들이 있나. 나무를 때서 밥을 짓고 구들을 덥히는 집도 거의 다 사라졌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풀벌레도 울지 않고 새소리도 시냇물이나 솔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 도시에서 살다가 일 년에 딱 한두 번 그것도 주차장이 되어버리는 길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인 귀향길을 거꾸로 바꾸어 버리면 어떨까? 한 해 내내 시골에서 온갖 살아 있는 것들과 벗이 되어 살다가 한 해에 한 두번 쯤 도시 나들이를 하는 걸로 말이야.
지금 시골에는 다 아다시피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계시고 젊은이도 아이들도 없잖아. 말하자면 과거만 있고 현재와 미래가 없는 삶터가 되어버린 거야. 이 노인네들 돌아가시면 누가 있어 농사를 짓지? 쌀도 보내주고 갖은 양념거리, 군것질감, 이것저것 아낌없이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시던 늙으신 부모님들 언제까지나 사실 건 아니고 참 걱정이야. 가끔 시골에 와서 도시에서 그 동안 쌓였던 온갖 마음의 때를 며칠 동안 씻어내고 새 기운을 얻어 돌아가는 것도 좋기는 좋은데. 그리운 고향을 지키려는 갸륵한 마음으로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콩밭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사연 알아보련다'고 흥얼거리며 보따리 싸들고 아예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으면 더 좋겠어.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내가 사는 곳도 살 만한 곳이야. 산 좋고 물 좋고 바다도 가까이 있고... 와서 같이 살 생각 없어? 당장은 와서 살 생각이 없더라도 연휴 때나 휴가철에 시간을 내서 서너밤 같이 지내면서 낮에 흘렸던 땀을 막걸리나 수박으로 보충해보는 것도 괜찮아. 특히 몸에 군살이 많아 걱정인 사람들은 괜히 비싼 돈 들여가며 살 빼는 곳에 다닐 필요가 없어. 여기 살다보니 허리띠에 구멍을 안쪽으로 네 개나 새로 뚫어야 할 만큼 허리가 날씬해지고 까칠하던 살갗에도 윤기가 돌더라고. 나이 쉰이 훌쩍 넘었는데도 팔에 알통도 생기지 뭐야. 뭐 그렇다고 여자들 팔에까지 알통 생기도록 할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하고.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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