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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땅, 죽어가는 마을 : 주곡을 생산하는 농민이 잘 사는 길을 찾아주어야 한다! 본문

사는 이야기

죽어가는 땅, 죽어가는 마을 : 주곡을 생산하는 농민이 잘 사는 길을 찾아주어야 한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20. 21:05

 

(중략) 지금 농촌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길이 없다. 말하자면 노인으로 상징되는 과거만 있고, 젊은이로 상징되는 현재도, 어린애로  상징되는 미래도 없다. 그나마 농촌 인구는 해마다 급속도로 줄어들어 노령화되고 부족한 지금의 농촌 일손으로는 '생명을 살리는 농업을 할 수가 없다.

 

쉽게 이야기하자. '생명'이라는 말이 여러가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이야기가 추상으로 흐르기 쉽다. 따라서 나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사람의 의식이나 정신이나 영성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몸을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다른 무엇이기에 앞서 '사람의 땅'이다. 사람 밖에 따로 무슨 보편의식이나 영이나 신 같은 것이 있어서 사람이 살지 않아도 여전히 자연이나 우주는 소중하다고 주장한다면 모를까, 보통사람에게 자연이 소중하고 우주가 신비롭고 생명이 귀한 것은 그것들이 모두 사람의 삶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마을 예에서 보았듯이 농촌은 현재 죽음의 선고를 받은 땅이다. 앞으로 얼마 안 있어 농촌을 지키고 있는 노인들은 사라진다. 대을 이을 젊은이도 어린이도 없다. 이대로 놓아두면 지난 수천 년 동안 대를 물려 이어져왔던 마을 공동체는 흔적없이 사라지도록 운명지워져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소농경제가 자연경제의 수준에 머물러 있어 국가발전을 더디게 해왔으므로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고, 소농 중심의 경작체계가 대단위 기업농 중심의 경작체계로 하루빨리 바뀌고, 사람 손이 중심이었던 원시 영농기술이 기계가 중심이 되는 현대식 영농기술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는 말이다. 대단위 기업농이 현대기술만을 이용하여 땅을 살리고 주곡을 비롯한 주요 농산물의 자급을 이룰 수 있다면 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은 이 이론을 뒷받침해 주지 못하고 있다. 조상 대대로 애써 한뼘한뼘 일구어왔던 비탈밭, 다랑이논들이 지난 십여 년 동안 찔레덤불과 칡넝쿨, 억새가 우거진 황무지로 바뀌어버린 것은 우리 마을 경우만이 아니다. 그리고 그 결과 주곡 자급률을 30퍼센트 이하로, 잡곡 자급률 5퍼센트 남짓으로 떨어뜨린 것으로 나타났다.

 

주곡 자급체계가 무너질 때 국민 전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긴급한 상황은 나라 안의 기근이나 전쟁 같은 직접 요인으로만 벌어지지 않는다. 공업발전을 앞당겨 수출을 많이 해서 나라 밖에서 모자라는 곡식을 사들이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은 너무나 순진하다. 경제쪽에서만 따지만 이른바 '비교 생산비 우위설'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제교육에서 식량수급을 결정하는 요인은 경제만이 아니다. 정치, 군사, 이념, 심지어는 종교에 이르기까지 경제 밖의 여러 요인들이 농산물의 수출입에 개입한다. 지난날 주요 곡물수출국이었던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저마다 '공업입국'을 부르짖고 나서는 바람에 중국을 비롯하여 여러나라가 차례로 식량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앞으로도 식량수출국으로 남을 나라는 손꼽을 정도다. 머지않아 유럽의 몇 나라, 그리고 캐나다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만이 식량수출국의 명맥을 이어갈지 모른다. 그런데 이 나라들의 식량공급도 안정되어 있다고 보기 힘들다. 게다가 이 나라들의 국내사정이나 국제관계의 변화로 언제 무슨 사정으로 식량수출이 줄거나 중단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국제식량기구는 현재 전세계의 비축식량이 두 달 분도 안 된다고, 그리고 앞으로 식량 사정도 날이 갈수록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불안정한 나라밖 식량공급망만을 믿고 우리 농촌공동체의 해체를 수수방관하거나 부추기는 일은 이른바 '생명을 살리는 농업'을 주줏돌부터 뒤흔드는 결과를 빚기 십상이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소농경제는 자급경제의 기틀이었다. 역사적으로 많은 땅을 제 몫으로 하여 토지를 대단위로 겸병하려는 토호들의 발호를 막고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고자 했던 국가정책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시행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산지가 많고 그에 따라 인력이나 축력에 의존하지 않으면 경작하기 어려운 땅이 많은 곳에서는 현대기술을 이용한 대단위 기업농이나 조방농법은 한계가 있다(유럽에서도 가장 선진국의 하나로 꼽히는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 인력과 축력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농업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은 좋은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형편이 이러한데 외세만 따르는 책상물림 농업정책 결정자들은 덮어놓고 농촌인구를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로, 더 나아가서는 5퍼센트로 줄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죽어가는 마을 공동체를 되살릴 어떤 뾰족한 처방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전체 농민이 벼농사를 뺀 다른 주곡농사를 내팽개치고 투기성이 강한 환금작물에만 집착하는 까닭은 한마디로 밀, 보리, 콩, 옥수수, 감자, 조 같은 주곡을 밭에 심어보았댔자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주곡 중심으로 농사를 지어 생활할 수 있고, 자식을 교육시킬 수 있다면 어느 누가 주곡생산을 꺼리랴. 나라의 농업정책이 바로 서려면 주곡을 생산하는 농민이 잘사는 길을 찾아주어야 한다.

 

다시 우리 마을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리 마을에서 하는 밭농사는 환금작물이 중심이라는 말을 앞에서 한 적이 있는데, 그 가운데 담배를 빼면 모두 투기작물이다. 대표적인 것이 마늘, 쪽파, 대파, 양파, 고추다. 작년과 올해(1995, 1996) 이태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마늘 농사는 겨우겨우 영농비를 건진 수준이었고, 쪽파와 대파는 이태 거듭 밭에서 썩히거나 뽑아서 길에 던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를 만큼 손해를 보았다. 양파는 지난 해에 망하고 올해는 돈이 되었다 한다. 고추는 지난 해에는 값이 좋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 온 동네가 비닐하우스 바닥에 전열판을 깔고 모종을 길러 비닐로 이중 멀칭을 하고 새로 보급된 굵은 철사로 된 하우스대를 사서 꽂아 여느 해보다 열심히 고추를 길렀는데, 처음에는 제법 값이 좋던 고추가 나중에는 마른 고추 한근에 1,500원에도 하자는 사람이 없어 수만 근이 마을에 쌓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 모든 환금작물의 씨앗은 종묘상이나 농협을 통해 구한다. 그리고 씨를 심거나 모종을 하기 전에 밭에 제초제를 뿌리고, 수시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뿌리는데, 특히 대파와 고추는 농약으로 목욕을 시키다시피한다. 나는 고추밭에 열다섯 번이나 스무 번까지 농약을 뿌리는 사람도 보았다. 그 결과 우리 마을 밭은 산자락에 있는 묵은 밭을 빼고는 토양 미생물도 지렁이도 살지 않는 죽은 땅이 되어버렸고, 비만 내리면 표토가 깎여나가 자갈이 점점 많아지고, 또 며칠만 가물어도 지표면이 돌처럼 단단히 굳어지는 박토가 되어버렸다. 또 농약이나 제초제 성분뿐만 아니라 화학비료 가운데 많은 양이 빗물에 쓸려 도랑을 타고 흘러 내려가 바닷물에 섞여 앞바다도 언제 부영양화로 적조현상이 일어날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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