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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생명지역 : 내 발밑의 땅이 살아 있음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독립출판 무간 2016. 8. 20. 16:05

 

생명지역이란 무엇인가? 이 말은 1970년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해서 지금도 샌프란시스코를 거점으로 '생명 지역주의 운동'을 계속 펼쳐나가고 있는 피터 버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어딘가의 땅에 살고 있다. 참으로 당연한 말이다. 그렇지만 바로 거기에 신비하고도 중요한 사실이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이 장소가 바로 '살아 있다'라는 점이다. 이를 생명 지역이라 부르기로 하자.

 

즉, 지역이란 우리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애초에 인간이 있든 없든 그것과 상관없이 '살아 있는 곳'이다. 또한 고유한 토양이나 지형, 수계나 기호, 동식물을 비롯한 수많은 자연의 특질을 갖춘, 독자적인 생명의 장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그러한 '생명의 장' 속에 들어가 사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이 장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이 생명 공동체 덕분에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산업사회, 특히 도시에서 인간 사회의 존재 방식은 생명 지역의 대척점에 서 있다. 여기서의 '지역'은 대체 가능한 장소다. 사람들은 직업에 따라서 한 지역에서 다른 한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그로 인해서 생활의 내용이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다. 이러한 점은 '기동성'이라 불리며, 고도로 발전된 사회의 특질로 높이 평가받는다. 규슈 지방에 살든 도호쿠 지방에 살든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뉴욕에 살든 파리에 살든 생활 면에서 이렇다 할 차이는 없다.

 

장소가 대체 가능한 것은 인간이 대체 가능한 것과 대응되고 있다. 장소와 인간은 상호 소원하고 익명적인 관계인 셈이다. 그 냉랭한 관계는 숲을 모두 베어 버리고 동물들을 마구 포획하고 광물 자원을 모두 파낸 뒤 다음 장소로 이동해 가는 대기업의 사업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에게 자연이란 그저 대체 가능한 자원에 불과하다. 현대의 심각한 환경 위기는 이런 사고 방식과 행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생명 지역주의는 '다시 거주하기(re-inhabitation)'를 제창하고 있다. 즉, 다시 한번 인간과 지역 간의 유기적이고도 온기 넘치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 곳에서 '사는 일'을 재학습하자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같은 게 없는 독특한 지형, 토양, 물의 흐름, 햇빛, 바람, 습도와 미생물에서부터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체가 공존하는 공동체 안에서 다시 한번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과 마음을 지닌 하나의 생명으로서의 멤버십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다시 거주하기'란 그렇게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라온 앎(slow knowledge)과 기술(slow art)의 프로세스다. 그것은 더불어서 우리가 잃어버린 먼 과거의 문화적 기억들에 대한 환기를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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