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흙과 오랜 세월 사귀어 온 작물들로부터 그 태평스러운 사귐을 배우자! 본문

사는 이야기

흙과 오랜 세월 사귀어 온 작물들로부터 그 태평스러운 사귐을 배우자!

독립출판 무간 2016. 8. 20. 15:34

<태평 농법의 권유>를 저술한 농학박사 니시무라 가즈오의 안내로 흙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흙이란 무엇인가? 흙은 본래 암석이 풍화된 것이다. 어째서 풍화하느냐고 묻는다면, 지구에는 물도 있고, 공기도 있고, 생물도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흙은 비로 인해 생긴다고 해도 좋다. 흙 속에는 풍화에 의해 생긴 무기물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다. 이러한 생물 또한 흙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흙 속에는 지렁이, 진드기, 선충 등의 토양 동물 외에도 곰팡이, 세균 등의 미생물이 많이 살고 있다. 비옥한 토양에서는 1그램의 흙 속에 대략 1억 마리의 생물이 살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생물이 흙을 비옥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대해서 니시무라는 말한다. '태평농법'의 첫째 원칙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고. 인간은 억척스레 일할 것이 아니라, 토양 속의 생물을 늘리는 요령만 터득하여 나머지는 그들에게 맡기면 된다고.

 

과연 비옥한 흙이란 어떤 것인가? 미생물이 살기 좋은 (개개의 미세한 토양 입자가 모여서 덩이를 이룬 구조인) 단립구조가 발달되고, 배수가 잘 되고, 물이 잘 빠지면서도 촉촉하고, 양분의 균형이 적절히 이루어지고, 다양한 생물들이 많이 살고, 유기물 분해가 잘 이루어지는 흙을 말한다.

 

바로 여기서 '태평농법'의 둘째 원칙이 나온다. 흙을 따로 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땅을 마구 파헤지고 지렁이를 함부로 동강내면서까지 애써 만들어진 흙의 구조를 파괴할 필요가 없다.

 

니시무라는 말한다. 흙은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아주 오랜 세월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것을 불과 반세기의 시간도 흐르지 않은 어중간한 과학기술로 이해하려 든다거나 바꾸려 드는 것은 인간의 오만일 뿐이라고 말이다. 우선 우리는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각각의 고유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물을 기르기 위해서는 그 작물의 시간을 이해해야 한다. 흙과 오랜 세월에 걸쳐 사귀어 온 작물들로부터 우리는 그 유장하고도 온화한 사귐을 겸허히 배워야만 한다.

 

지구상의 다양한 전통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그와 같은 느린 사귐을 그야말로 아주 천천히 이어온 것이 아니던가. 니시무라는 이 점에 대해서 다른 생물로부터  삶의 방식을 배우는 커뮤니케이션 또한 그 안에서 전승되어 왔다고 말한다. 이는 '생물학적 휴내내기(bio-mimicry)'라는 전문용어로 통용되는데, 그 안에는 전문가들뿐 아니라 우리 일반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지혜가 담겨 있다.

 

흙은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 기반이다. 토양이 고대 식물을 생장시켰고, 역으로 그 식물이 바람과 물에 의한 토양의 침식을 막아왔다. 식물이 생과 사를 반복하면서 토양이 축적되었으며, 그 토양은 식물과 그것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다양성까지도 뒷받침했다. 불과 몇 센티미터에서 십몇 센티미터의 두께밖에는 되지 않는 얇은 피부와 같은 표토가 인간 문화와 문명의 기반을 만들어 온 셈이다. 그것이 바로 원주민들이 '어머니인 대지'라고 표현하는 말의 진의다.

 

하지만 현재 그처럼 얇은 피부 같은 표토가 급속하게 유실돼 가고 있다. 월드워치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에서는 매년 500평방킬로미터가 넘는 농사가 사막화되어 가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토양 침식에 의한 생산력 저하로 최근 20년 간 경지의 절반이 사람들로부터 버려졌다. 그리고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표토의 유실은 새로운 토양을 형성하는 자연의 속도를 뛰어넘으며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증가하는 인구를 떠받치기 위한 식량 생산의 기반까지도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가속화되고 있는 공업적이고 화학적인 농업, 축산업이 야기시키는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1차 산업의 느린 존재양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니시무라의 말처럼 인간이 생물과 흙의 고유한 시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자연과의 태평스러운 사귐에 대해서 다시 배워야할 것이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Comments